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이후 양대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출판사 문학동네가 인적쇄신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창비에서도 인적 교체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낙청(77) 창비 편집인이 거듭 신씨 옹호에 나서면서 표절 논란은 또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인적 쇄신으로 돌파할까=백 편집인은 올 초부터 사내 직원들에게 내년 창비 50주년을 계기로 편집인 자리를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편집위원 사이에서도 가을호에 대한 문학계 반응과 창비 내부의 논의 등을 지켜보며 자진 사퇴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문학동네의 대표 및 1세대 편집위원 퇴진안이 거론되면서 창비의 백 편집인과 편집위원들의 결단이 앞당겨질지 주목된다. 창비는 4일 직원 및 편집위원 전체 토론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표절 사태에 대한 후속 대응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학동네(1993년 창간)는 강태형(58) 대표이사와 남진우·류보선·서영채·신수정·이문재·황종연 등 창간 원년 편집위원이 내달 주주총회를 통해 물러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 대표는 보유 지분 중 20% 남짓을 대표 이사 ‘직위 지분 양도’ 형식으로 차기 대표에게 넘기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새 대표이사로는 염현숙 현 편집이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 이사는 “이번 쇄신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고,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며 말을 아꼈다. 단행될 경우 현 대표와 편집위원들로 구성된 문학동네 주주 대부분이 일선에서 후퇴하는 모양새가 된다. 문학동네는 ‘강병선(강 대표 본명) 45.5%, 서영채 외 5인 44.5%의 지분율로 구성돼 있다.
문학동네가 인적쇄신이라는 초강수를 고민하는 배경에는 지분구조에서 보듯 출판사, 편집위원(비평가), 작가들이 ‘침묵의 삼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현 출판구조에 대한 비판이 거센 탓으로 보인다. 편집위원 남진우씨는 신씨의 남편이다.
문학동네는 이날 발간된 ‘문학동네’ 가을호 서문에서 편집위원 권희철 평론가의 입을 빌어 신씨 소설이 표절이라는 입장을 처음으로 표명하고 사과했다. 권 평론가는 그러나 ‘주례사 비평’ ‘문학권력’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작품의 품질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는 비평가들이야말로 ‘권력’을 꿈꾸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 신씨 거듭 옹호…왜?=백 편집인은 31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신씨를 재차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저자의 파렴치한 베껴쓰기를 단정하고 거기다 신경숙은 원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자의적 평가마저 곁들여 한국 문학에 어쨌든 소중한 기여를 해온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에 결코 합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7일에도 “(신씨의)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점에는 합의했지만 의도적 베껴쓰기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백 편집인의 거듭된 두둔은 신씨가 명성과 돈을 모두 쥔 스타작가로 성장하는 데 그가 일정 정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씨의 출세작 장편 ‘외딴방’(문학동네)은 1995년 출간 당시 남진우씨가 해설을 써줬으나, 99년 2차 출간 때는 백 편집인이 해설을 맡았다. 이 작품은 앞서 96년 창비의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이 상은 역대 리얼리즘 계열 작품이 수상했다. 이로써 “신 작가는 대중성과 함께 창비에 내재된 진보적 가치까지 부여받으며 한국문학 정상에 우뚝 서게 됐다”고 문학평론가 정은경씨는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도 지적했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문학동네 이어 창비도 인적쇄신 움직임… ‘신경숙 표절 파장’ 어디로 가나
입력 2015-09-02 03:37 수정 2015-09-02 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