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몰래카메라·몰카탐지기 계단 위로’라는 문구가 상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몰래카메라 파는 곳을 물어보니 상인들이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계단을 오르자 “찾는 거 있어요?”라며 한 상인이 말을 건넸다. 그는 “요즘은 키홀더가 가장 잘 팔린다”며 자동차 열쇠 모양의 카메라를 꺼내왔다. 단추를 누르자 접혀 있던 자동차의 열쇠 부분이 튀어나왔다. 이 열쇠 안쪽으로 메모리카드와 USB 연결단자가 드러났다. 겉모습만으로는 카메라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가격은 20만원.
그 밖에도 단추, 만년필 등 다양한 모양의 변형 카메라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이 상인은 “몰카 탐지기도 소용없다.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촬영 내용을 전송하지 않고 저장하는 이른바 ‘저장형 매체’는 전파를 쓰지 않아 몰카 탐지기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된 ‘몰카’는 이제 돈벌이 수단으로 변화했다. 불특정 다수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중대범죄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일천하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너무도 손쉬운 ‘몰카’=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몰카’는 돈이 된다. 한번 밖으로 나온 사진과 영상은 빠르게 퍼진다. 정보력을 과시하듯 또는 선심을 쓰듯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으로 퍼 나른다. 좋은 구경거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스마트폰과 모니터를 통해 보면서 혹시 누가 뒤에서 접근하지 않을까 신경을 쓴다. 우리 사회에서 ‘몰카’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이다.
‘몰카’는 촬영뿐만 아니라 유통도 쉬워졌다. 몰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지난 18일 경찰은 국내 워터파크 여자 샤워실과 탈의실 내부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포된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사이트와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해당 영상이 광범위하게 퍼진 뒤였다. 정모(28)씨는 “워터파크 몰카가 유출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30분도 안돼서 친구들한테 관련 영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 촬영과 유통이 쉬워지면서 ‘몰카’ 범죄도 크게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10년 1134건, 2011년 1523건에서 2012년 2400건, 2013년 4823건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6623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7월까지 벌써 약 4600건이 발생했다.
‘몰카’가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번지고 있지만 경찰 수사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범죄로 인식하고 몰카를 유통·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왜 몰카에 빠져드나=무엇이 대한민국을 ‘몰카 천국’으로 만들었을까. 전문가들은 만연한 ‘몰카’를 단순한 관음증이 아닌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일 “음란물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관음증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품을 목적으로 몰카를 촬영하고 유포하는 행위에 성도착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몰카를 유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면서 몰카가 늘어났다”며 “인터넷에서 음란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몰카 범죄의 처벌 수위도 낮아 만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교수는 일상화되면서 ‘몰카’를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에 음란물이 쏟아지다 보니 학생들도 몰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됐다. 선생님 치마 속을 몰래 찍으면서도 문제인 것을 모르게 됐다. 문제의식 없이 너도 나도 찍게 된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훔쳐보려는 욕구가 ‘몰카’를 불러왔다는 진단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연출되지 않은 영상에 대중이 흥미를 가지는 것”이라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중의 사랑을 받듯 현실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몰카를 퍼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이모(25)씨는 “몰카는 실제 상황”이라며 “각본에 의해 짜여지지 않은 실제 상황을 느끼고 싶어 몰카를 찾게 된다”고 했다.
웨어러블기기의 발전으로 ‘몰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사방이 몰카인 시대다. 기술 발달로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언제든 정보 수집이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개인 사생활 보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훈 김판 기자 zorba@kmib.co.kr
[기획] 죄의식 없는 ‘공유’ 사람 잡는 몰카, 사회가 ‘공범’… ‘몰카’의 심리학
입력 2015-09-02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