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구파발 검문소에서 의경의 왼쪽 가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박모(54) 경위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 등을 중심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경찰은 현재까지 정황상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살인죄 적용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 사건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울산·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 등이 발생할 때면 살인죄 처벌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가해자가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할 경우 살인의 ‘고의성’은 수사기관이 밝혀야 한다. 이번 사건도 박 경위가 ‘박모 상경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긴 점(미필적 고의)이 입증돼야 한다.
법원은 ‘살인 의도’를 판단할 때 동기, 범행 후 행동, 흉기 종류와 사용방법, 공격 부위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 기준은 국민 법감정에 비해선 엄격하다.
2012년 10월 박모(43)씨는 여자친구와 싸운 직후 차로 치어 숨지게 했는데 1·2심 모두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박씨가 저속주행 도중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 바로 차를 세운 점, 시간대가 야간이었고 박씨의 왼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였던 점 등이 고려됐다. 신모(21·여)씨는 지난해 3월 한 살배기 아들의 배를 4번 때려서 죽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됐다. 반면 2심은 인공호흡을 한 점 등을 고려해 상해치사죄로 유죄 선고했다.
2011년 성매매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이모(47)씨의 경우 1심은 초면인 여성을 살해할 동기가 없는 점,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일탈행동을 하다 발생한 범행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살인죄를 무죄로 봤다. 그러나 2심은 급소인 사람 목을 깍지를 끼고 강하게 조른 점 등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이처럼 ‘살인의 고의’는 검찰·법원, 하급심·상급심 판단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영역이다. 박 경위에게 살인죄 적용 여지가 있다는 측은 그가 총을 급소인 가슴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긴 점에 무게를 둔다. 실탄이 든 총을 안전장치까지 벗기고 쐈는데 과실로 단정하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27년차 경찰이 장전 상태를 헷갈렸다는 점도 의문이다.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론 살인죄 적용이 어렵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살인 동기를 찾기 어렵고, 사건 직후 박 경위가 매우 놀라며 슬퍼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과실에 가까운 사고라는 것이다. 서울의 한 판사는 “살인죄가 적용되려면 실탄 발사 경위, 내무반의 평소 총기 관리 상황, 사건 당사자들의 관계 등에 대한 추가 증거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의경 총기 사망 사건 ‘살인죄 적용’ 논란… “미필적 고의 의한 살인” “정황상 업무상 과실치사”
입력 2015-09-02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