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일 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은 질병관리본부 위상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초기 역학조사 실패로 커졌다고 보고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대처 능력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가 ‘1급(실장급) 기관’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됐다고 해서 쉽게 방역 관련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24시간 긴급상황실(EOC) 운영이나 검역체계 강화 등은 진작 마련됐어야 하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방역 중심=이번 개편으로 질병관리본부는 국가방역체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 정부는 감염병 위기경보의 모든 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에서 질병관리본부가 방역 대책을 도맡도록 대응 체계를 새로 짰다. 기존엔 ‘심각’ 단계가 되면 질병관리본부 대신 보건복지부가 전면에 나서는 체계였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도 대책본부 책임자는 질병관리본부장에서 복지부 차관, 장관 순서로 바뀌었다.
앞으로는 최악의 감염병 위기가 와도 질병관리본부가 방역 조치를 총괄 지휘하게 된다. 정부가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인사·예산권을 준 것도 이 때문이다. 역학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공무원 직렬에 ‘방역직’도 생긴다. 한마디로 인력과 권한을 줄 테니 감염병은 질병관리본부가 전적으로 책임지라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국무총리실과 복지부, 국민안전처는 지원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가 복지부 산하에 있는 한 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이진석 교수는 “차관급이라고 하지만 복지부의 지휘·통솔을 받는다는 점은 변한 게 없다”면서 “감염병이 또 발생할 경우 기술적 대처는 질병관리본부가 하고 의사결정은 복지부 행정관료가 하는 방식이 재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질병관리본부에 협조와 지원은 하되 간섭하는 것은 제가 철저히 막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메르스 사태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 실수를 한 질병관리본부에 책임을 묻는 절차가 먼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감염병 전문병원 신설 빠져=감염병 전문 치료체계 구축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삼고 권역별로 3∼5곳의 전문치료병원을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야당 등 일각에서 주장한 감염병 전문병원 신설은 개편안에서 빠졌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각 지역의 대형병원이 환자를 치료했다. 이때 문제가 됐던 다른 중증 환자와의 분리 문제는 개편안에서 상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전문 치료체계에 속한 병원에서 음압병상을 최소 300개 이상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국적으로는 음압병상을 2020년까지 1500개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교수는 “메르스 사태 때 병원들은 메르스 환자와 다른 중증 환자가 뒤섞인 상황에서 엄청난 불안감 속에 진료를 해야 했다”면서 “이 체계로 효과적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사후약방문 조치=24시간 긴급상황실은 신종 감염병 의심 신고에서부터 현장 출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게 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본격 운영에 앞서 질병관리본부에 임시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기로 했다.
검역도 강화돼 앞으로는 위험 국가에서 입국한 전원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게이트 검역을 실시한다. 검역소와 진단·의료기관이 상호 간 정보 수집이 가능하도록 ‘스마트 검역체계’도 구축된다. 국립보건연구원에 감염병 전용 진단실험실이 마련돼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기존 2일에서 8시간으로 줄어든다. 감염병 의심환자가 발생할 경우 질병관리본부 방역관을 팀장으로 하는 ‘즉각대응팀’이 구성돼 현장에 파견된다. 즉각대응팀은 민간 전문가와 함께 현장에서 야전사령관 역할을 한다. 필요할 경우 병원 출입과 대중교통 흐름을 통제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감염 관리에 관한 기본적 조치여서 뒤늦은 감이 있다”며 “감염병 발생 시 민간 의료기관에 정보와 지침이 신속히 전달될 수 있도록 민관공조 체제 구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정부 방역체계 개편] 독립성 보장 안 된 차관급으로 방역 총지휘 가능?
입력 2015-09-02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