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에서 가장 ‘핫’한 상임위원회는 정무, 산업통상자원, 환경노동 등 3곳이다. 오는 10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출석할 재벌 총수 등 기업인 증인을 결정하는 곳이다. 올해는 롯데그룹 ‘형제의 난’ 이후 총수 호출 경쟁이 한층 심해졌다. 증인 신청을 무기 삼아 친인척이나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는 행태도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겉으론 ‘알권리’ 뒤로는 ‘민원 처리’=‘빅3’ 상임위 여야 간사들은 1일에도 증인 협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재벌 개혁에 초점을 맞춘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제 있는 기업 총수들을 국감장에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기업 길들이기 식의 국감은 안 된다고 맞섰다.
산자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진복 의원은 “야당이 지난번보다 기업인 증인 수를 줄였지만 아직도 입장차가 커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은 당초 140여명을 요구했었다. 정무위 사정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이 이날 증인을 60여명으로 대폭 줄인 안을 제시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환노위에선 노사 분규가 진행 중인 중소기업 대표들의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는 바람에 논의에 진척이 없다.
이런 틈을 타 일부 의원들의 ‘갑질’ 행태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 의원은 최근 방송 콘텐츠 업체 대표와 임원들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해당 업체에 특별한 이슈가 없는 상황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국회 안팎에선 “의원 지인이 출연했던 프로그램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같은 당에서조차 “당에 먹칠한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일단 의원실에서 총수를 증인으로 신청한 뒤 기업에서 접근해오면 본격적으로 본심을 드러내는 일도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개 후원금을 내라고 에둘러 압박하거나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지역구에서 운영해 달라고 하는 식이다. 과거 지역구 행사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복성’ 증인 신청을 남발하고 터무니없이 많은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감사 대상은 국가기관, 특별시·광역시·도 등으로 규정돼 있다. 지자체의 경우 국가위임사무, 국가가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만 감사 범위에 포함된다. 다만 상임위에서 증인·참고인을 불러 증언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등을 근거로 매년 기업 총수가 국감장에 서는 일이 관례화돼 왔다.
올해는 기업인 증인 수가 최대를 기록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면세점 특혜 입찰 등 재계에 대형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매년 총수 망신주기 국감에 대해 개선 목소리가 나왔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감 때가 아니면 언제 재벌 총수가 고개를 숙이겠느냐는 여론도 적지 않다.
정무위 관계자는 “지난해 정무위에서 출석을 통보한 기업인 증인과 참고인은 50여명이었다”며 “올해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고 했다. 정무위는 국무조정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소관 기관이어서 사실상 모든 기업에 증인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총수 출석만은 막아라” 재계 총력전=총수 소환이 거론되는 기업들은 출석을 요구한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통사정하는 게 일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총수보다는 각 계열사 대표이사가 현안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제기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담은 자료를 만들어 선제적으로 배포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감 때마다 총수 소환이 거론되는 다른 기업은 피로감을 토로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총수를 증인으로 부르는 이유가 국민 앞에서 망신 주고 정치인들은 이름을 알리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관련 이슈를 정쟁에 이용하지 말고 꼭 필요한 사람을 증인으로 부르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했다.
권지혜 노용택 기자 jhk@kmib.co.kr
[기획] 겉으론 ‘알권리’ 뒤로는 ‘민원’… 속보이는 증인석 앉히기
입력 2015-09-02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