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질병관리본부 격상·확대 개편에 꼭 유념할 것들

입력 2015-09-02 00:49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발생한 지 100일이 갓 지났다. 메르스가 사실상 종식됐지만 그 피해는 엄청났다. 36명이 사망했고, 누적 격리 인원만 1만6000여명이었다. 경제 피해액은 10조원대에 달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부실한 응급실 체제, 종합병원으로의 과도한 집중, 감염병 전문의 부족, 후진적인 간병문화 등 취약한 의료 시스템이 그대로 노출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우리 정부에 권고한 개선안은 5가지였다. 질병관리본부(질본) 리더십 구축, 공공의료 시스템 강화,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공동 대응,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강화, 질본의 국제협력 강화 등이 그것이다.

국내외의 이런 조언들은 어느 정도 반영됐을까. 1일 발표된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질본 본부장 차관급 격상, 진료 의뢰 수가 도입, 역학조사관 확충, 감염병 긴급상황실 24시간 운영, 상급병원 음압병실 1% 이상 설치 의무화 등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격상시킨 질본 본부장에게 감염병 발생 시 대책본부장 역할을 맡겼다는 점이다. 질본이 보건복지부에서 독립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실장급이 아닌 차관급이 본부장을 맡게 돼 조직의 위상이 높아졌다. 본부장은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인사와 예산권을 일임받아 행사할 수 있도록 권한도 확대된다. 메르스 초기 컨트롤타워 부재로 우왕좌왕했던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느냐 여부다. 차관급으로 격상되면 이전보다 발언권이 커질 수는 있지만 복지부 산하여서 관료적인 의사결정 구조상 주도적으로 대처하기 힘들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의 질병관리 야전사령관에 해당하는 ‘서전 제너럴’처럼 질본 본부장에게는 막강하고 독립적인 지휘권이 부여돼야 한다. 질본을 독립 ‘청’으로 구축하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적인 운영틀이 유지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해야겠다.

병·의원급 의사가 상급병원에 환자를 보낼 때 작성해주는 진료 의뢰서 유료화도 현재의 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정의학과, 응급실 등 상급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여전히 열려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지역사회 의원과의 공조체제 구축, 응급실 및 중환자실의 전문의 대기 문제, 대국민 소통 및 홍보 기능 방안 등은 아예 빠져 있다.

정부는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이번 개편안에 보완할 점들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런 방역 체계로 제2, 제3의 메르스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완벽에 가까운 종합대책만이 국민들의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소를 잃은 다음에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또다시 소를 잃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