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의 사이버 냉전… 美, 해킹 中 기업들 제재 검토

입력 2015-09-02 02:06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북극 외교장관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행정부가 이달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국빈방문을 앞두고 사이버해킹의 책임을 물어 중국에 대한 제재 검토에 착수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남중국해 갈등과 위안화 절하 등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해킹 제재가 이뤄질 경우 또 다른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회담은 매우 껄끄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될 전망이다. 미·중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인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현지에서 해킹 문제를 거론했다고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밝혔다.

◇해킹 제재를 둘러싼 딜레마=WP는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 여부가 ‘2주 안에’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5개 안팎의 국영기업과 임원들이 제재 검토 대상에 올라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들이 제재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모두 함구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기업들이 미국 원자력발전소의 기밀정보와 검색엔진코드, 농업기술 등을 빼돌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해칠 만큼 광범위하게 해킹을 저지르고 있다고 미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제재 대상은 해킹으로 이득을 볼 중국 기업들로 압축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방미를 앞둔 시점에도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사이버해킹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백악관과 법무부, 재무부 등이 제재 대상과 수위, 시기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특히 재무부가 중국 기업들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재가 이뤄질 경우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접근 제한 조치와 해당 기업 임원들의 미국 여행 금지 등이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은 사이버해킹에 연루된 중국 장교 5명을 기소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제재가 중국의 반발과 보복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빌 라인시 미국 무역위원회 의장은 “중국은 늘 보복을 해왔다”며 “제재가 가져올 고통과 정치적 압력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제재가 이뤄지더라도 시 주석의 방미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제재는 미 연방인사관리처의 전산망 해킹으로 2200만명의 전·현직 공무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과는 무관하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중국을 최대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아직까지 행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의 책임소재를 추궁하려는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중·러 정보기관 해킹 합작”=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중국과 러시아 정보기관들이 공조해 미국 내 정보기관과 기업의 기밀 자료를 무차별 해킹하고 있다고 미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해킹으로 미국 정보기관의 해외 비밀공작을 지원하는 비밀 네트워크 한 곳이 위험에 처했다고 미 정보기관들은 우려했다. 미 정부는 이에 따라 정부 웹사이트, 사회보장번호,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 대한 강력한 사이버 방화벽 구축에 나섰으나 해커들의 무차별 공격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