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적벽가’ 연출로 무대 복귀 이소영 “애송이 시절 만난 창극, 20여년 만에 연출”

입력 2015-09-01 02:43

‘이소영표 창극’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국립극장의 2015-2016 시즌 개막작으로 국립창극단이 9월 15∼19일 해오름극장에 올리는 창극 ‘적벽가’는 ‘이소영표 오페라’ 브랜드를 구축했던 이소영(54·사진)이 연출을 맡았다. 2011년 7월 국립오페라단장에서 퇴임한 후 4년간 칩거했던 이소영의 무대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공연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국립오페라단 후원회장이었던 고(故)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의 추모콘서트에서 연출을 맡았던 것 외에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31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국립오페라단 시절 숨도 못 쉴 정도로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그동안 푹 쉬며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호상 국립극장장님이 고맙게도 다시 무대로 불러주셔서 창극을 연출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 여성 오페라 연출가 1호인 이소영은 1997년 ‘결혼 청구서’로 한국 오페라계에 본격 데뷔했다. 예술의전당과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참신하고 강렬한 무대가 돋보이는 화제작을 연달아 연출하며 국내 최고 오페라 연출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8년 국립오페라단 역대 최연소 단장으로 임명된 이후 임기 3년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은숙 전임 단장이 만들었던 오페라단합창단을 해체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경력 부풀리기 및 예산 낭비 의혹 등으로 감사원 조사를 받기도 했다.

복귀작이 오페라가 아닌 창극인 것에 의아해하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그는 창극과 인연이 꽤 깊은 편이다. 1993년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처음 한 일이 국립창극단에서 이병훈이 연출한 창작 창극 ‘구운몽’ 조연출이었다. 그는 “애송이 시절 창극과 만났을 때 그동안 공부했던 오페라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소리와 드라마로 이뤄진 무대라는 점에서 두 장르는 차이가 없다”면서 “그래서 언젠가 내가 창극을 연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창극 연출 제안을 받고 송순섭 명창이 완창한 ‘적벽가’를 들으면서 연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고 했다.

‘적벽가’는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것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도 가창의 난도가 가장 높다. 국립창극단도 창단 50년 동안 3번 올렸을 뿐이다. 참신한 오페라 해석으로 정평이 났던 그는 ‘적벽가’의 소리는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모든 등장인물을 적벽대전에서 스러져간 망자(亡者)로 놓고, 이 망자들로부터 전쟁의 핏빛 역사를 듣는 무대로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적벽가’의 사설 배열이 살짝 바뀐 게 특징이다. 그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전쟁 같은 의미 없는 역사가 반복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여든의 송순섭 명창이 작창과 도창을 직접 맡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