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지용] 중국 전승절과 한국 외교

입력 2015-09-01 00:20

중국이 9월 3일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전승절)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2차 세계대전에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부각시키고 중국 국민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승기념 열병식을 통해 중국의 국방력을 과시함으로써 현재 중국의 국력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할 예정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전승절 기념행사에 전 세계 30개 국가에서 국가 정상이, 19개 국가에서 정부 대표가, 그리고 10개 국제기구 대표 등이 참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가 정상이 참석하는 주요 국가들은 한국을 포함해 러시아, 프랑스, 베트남 등이 있다. 한국은 이번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군 참관단이 참석한다. 한국의 정상이 참석하는 만큼 그 의미와 외교적 함의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는 그 규모만큼이나 큰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1945년 9월 3일 일본으로부터 공식적 항복문서를 접수한 주체는 현재 대만(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였다. 중국공산당은 이번 행사를 통해 항일전쟁 승리가 국민당과 공산당을 포함하는 중국 국민 전체의 승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중국공산당이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정통성 문제와도 연관돼 있는 것이다. 또한 전후 7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이 전승국으로서의 실질적 국력을 갖춘 국가로 탈바꿈했음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전승기념 제목이 보여주듯이 중국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중·일 간 경쟁을 감안하면서 중국이 역사적으로 승리했음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대중국 견제에 대한 선언적 경고이기도 하다. 동시에 미·일동맹과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역사적 지분을 현재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전승절 행사는 이와 같이 외형적으로는 역사적 기념행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재의 중·일 갈등과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반영돼 있다.

중국 전승절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는 전격적인 참석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전승절 기념일에 앞선 2일, 시진핑 주석과 여섯 번째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항일전승의 의미를 살려 상하이 임시정부 재개관식에 참석한다. 이번 박근혜정부의 결정은 시종일관 견지해온 원칙과 유연성에 기반한 적극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변 강대국인 중국과의 우호관계 강화를 위해 외교적으로 적극 대응함으로써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한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중국 전승절 외교는 한국의 적극 외교가 성과를 보일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중국의 전승절은 대외적으로 일본에 각을 세우는 갈등적 상징성이 분명히 있다. 때문에 한국의 적극 외교 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즉 중국이 설정한 상징성 속에 들어가 그 상징성을 보다 미래지향적·발전적으로 승화하는 외교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적극적 외교를 통해 주변 강대국이 갈등적 구도를 극복하고 협력을 지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전승절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다시금 제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10월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외교적 성과를 담보할 수 있는 토대 또한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과 북핵 문제에 대한 한·중 공조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중국 전승절에서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성과가 기대된다.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