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死線의 난민’ 껴안는 국제사회… 유럽 정치지도자들의 무관심 속 구호단체들 나눔 행사 넘쳐

입력 2015-08-31 02:41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로 피난 와서 볼펜을 팔며 사는 시리아 난민 부녀 압둘과 리임의 사연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흘 만에 15만 달러(약 1억7660만원)가 모금되는 등 인터넷을 통한 난민돕기 캠페인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인디고고 사이트

칼릴 나브한(22)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3학년생이다. 그는 수시로 시내의 ‘난민기부센터’를 찾아온다. 그가 오면 수십명의 아이들이 몰려들고 그는 두둑한 가방에서 롤리팝 사탕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어디를 가든 냉대를 받아온 난민 아이들에게 현지인이 나눠주는 사탕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랑’이다. 그의 친구인 여대생 니키카 스트라이자크는 난민들에게 세르비아어를 가르쳐주러 이곳에 오는 등 사랑을 나누려는 이들은 계속 늘고 있다.

유럽 정치 지도자들의 난민들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도 세르비아 난민기부센터에서는 언제나 사랑과 나눔이 넘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세르비아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선 형편이 좋지 않지만 현지인들은 난민들에게 전할 옷가지와 특히 아이들을 위한 영유아용품을 센터에 적극적으로 보내오고 있다. NYT는 “난민센터 자원봉사자들이 ‘우리(현지인)’와 ‘그들(난민)’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있다”고 전했고, 네나드 포포비크라는 자원봉사자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난민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난민들에 대한 사랑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다수가 돈을 모아주는 사이트)인 인디고고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지난 27일 개설된 ‘압둘과 리임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도와주세요’란 모금 캠페인은 개설 30분 만에 목표액 5000달러(약 588만원)를 달성했으며 사흘 만에 15만 달러(약 1억7660만원)를 모았다. 이 캠페인은 분쟁 전문 매체인 컨플릭트뉴스를 운영하는 기수르 시모나르손이 시작한 것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볼펜을 파는 시리아 난민 부녀를 돕기 위한 것이다. 딸 리임(4)을 안고 볼펜을 파는 아버지 압둘의 사진이 ‘#BuyPens’라는 트위터 계정으로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모금액이 급증했다. 아버지 압둘은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모금이 내 삶을 바꿨다”면서 “아이들이 나와 거리를 떠돌지 않고 교육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난민들에게 냉랭했던 서유럽에서도 점차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 27일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트럭 짐칸에서 난민 시신 71구가 발견돼 전 세계에 충격을 준 가운데 주말 사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는 현지인들이 ‘이름 없는 난민’들을 위한 추모 행사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자국땅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다수가 목숨을 잃은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반(反)이민 정서가 강했던 독일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이민자들에 대한 유화책 발표 이후 점차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말 사이 유럽에서 이민 반대 목소리가 가장 거셌던 도시인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5000명이 참석해 ‘난민 환영’이라는 피켓을 들고 친(親)난민 정책을 촉구했다. 또 독일 공영 국제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통독 25주년 기념일 다음날인 10월 4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난민구호연대(solidarity)’를 위한 팝 콘서트를 개최키로 했다.

69세인 독일 록 음악의 전설 우도 린덴베르크는 이민자들을 위해 ‘우리는 이제 친구가 됩시다’라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의 전쟁이나 내전 등 난민이 생기는 근원적 이유를 해결하지 않고선 난민들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유엔과 미국 등 유럽 대륙이 아닌 국제사회가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유럽의 태도에 대해 ‘유럽의 이기주의’라고 비난하지만 유럽에만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은 국제사회 전체가 내전과 전쟁을 억제하고, 또 이미 생겨난 난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다같이 동참할 의무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손병호 조효석 박상은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