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알 수 없는 인생

입력 2015-08-31 00:18

저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항상 이문세씨의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곡이 수록된 음반을 챙깁니다. 이 노래엔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중략)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중략)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죠’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노랫말처럼 많은 분들이 ‘인생에 대하여 좀 알고 살아가면 좋겠다’ 하는 심정이 있을 것입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면 그것처럼 살맛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노력만 하면 다 이룰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삶이라면 불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엉뚱한 일을 만나 낭패를 겪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노력은 우리의 몫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음료를 고르고, 동전을 넣으면 ‘내가 고른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나온 ‘해 아래에서 보니’라는 말씀은 해 아래 사는 인생들, 곧 창조주도 아니고 전능자도 아닌 우리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인과관계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 인생일지라도 ‘새가 올무에 걸릴 것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날아다니고, 물고기가 그물에 걸릴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헤엄쳐 다니지만 예상치 못한 때에 잡히는 것’처럼 그 시간과 때를 모르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13∼16절을 보면 작고 연약한 도시를 힘 있는 큰 나라가 포위하여 공격하려고 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패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 앞에 쓸모없이 보이던 지혜가 힘을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이런 일이 있었지만 아무도 지혜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지혜)으로 인생을 살자고 하지만 또다시 세상의 방법(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는 않은지 두렵습니다.

17∼18절은 ‘조용히 들려오는 지혜’가 세상의 그 어떤 힘과 권력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연약한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강력한 소리이고 뚜렷한 주장입니다. 모두가 힘을 원하지만 우리 인생에 진정 필요한 것은 시대의 주류가 외치는 우렁찬 소리가 아니라 ‘조용한 지혜자의 말’입니다. 물론 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입니다. 세상에 비해, 강력한 어떤 힘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지혜만이 우리를 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고 그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궁극적으로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순종함으로 알 수 없는 인생길일지라도 주 안에서 행복한 인생길을 가시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남태일 목사(부천 어.울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