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대박’ ‘통일은 경제’ 같은 거대 구호가 아니더라도 통일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많은 가능성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통일은 평화’이고 ‘평화는 일상’이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라는 전형적인 말보다 ‘전쟁의 반대말은 일상’이라는 말이 훨씬 더 다가온다. 남북회담을 하는 며칠 동안 피난소에 갇혀서 생고생하던 접경지역의 주민들이 합의문 발표 후 찾은 것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 일상이 아무리 힘겹고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일상을 잃는 자체는 너무 고달프다.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그렇게도 좋을 수 없었다.
‘일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자. 그 일상이 일상으로 지켜질 수 있는 데에 평화의 의미를 부여하자. 발 뻗고 편히 자는 것, 때 되면 밥을 지어먹는 것, 아이가 학교 가는 모습을 보는 것, 일하러 나갈 수 있는 것, 따뜻한 불이 켜지는 저녁이 있는 것, 마음대로 물을 쓸 수 있는 것 등 일상을 그리는 자체가 평화의 의미이다.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른다.
일상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가. 한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도 온 가족의 수없는 노력이 들어간다. 한 가정이 그러할진대, 한 사회, 한 국가가 평상과 같은 일상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이번 남북합의가 반가우면서도 과연 이 정도의 합의문에 반가워해야만 하는 상황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왜 우리가 우리의 평화에 주도적이 되지 못하는가. 아니 왜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 대해서 불안해해야만 하는가. 왜 일상이라는 평화 위에 더 큰 꿈을 그리고 그 큰 꿈을 위해서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지 못하는가. 그리고 물론, 합의문이라는 하나의 이벤트 이상으로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일상이 수없는 노력이듯, 평화란 수없는 노력이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평화란 일상이다
입력 2015-08-31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