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예술극장이 9월 4일 개관한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개 기관 중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것이다. 동시대 아시아 공연예술의 허브를 지향하는 아시아예술극장은 3주간의 개관 페스티벌과 5개월의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동안 준비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앞으로 운영도 만만치 않은 아시아예술극장이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5개 시설 중 아시아예술극장이 콘텐츠 준비 확실=옛 전남도청 자리에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전당)은 2005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온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이다. 연구, 교류, 창작, 공연, 전시, 교육 등의 활동이 이뤄지는 복합문화시설이다.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아시아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당의 콘텐츠 개발 업무와 개관 준비를 위해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한 특수법인 아시아문화개발원은 최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에 따라 ‘아시아문화원’으로 조직을 바꾸고 새롭게 인력을 구성중이다.
지난해 10월 준공된 전당은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9월 개관을 목표로 했다. 5개 기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3년 안팎으로 각각의 콘텐츠를 준비했다. 하지만 아시아예술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은 콘텐츠 부족으로 개관을 연기했다. 전당은 11월 25일 공식 개관하겠다고 밝혔으나 더 연기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예술극장(예술감독 김성희)은 지난 1월 문체부가 외부 평가위원들에게 의뢰한 5개 기관 콘텐츠 점검에서 유일하게 합격점을 받았다. 아시아 공연예술의 제작과 유통 플랫폼이라는 아시아예술극장의 미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꾸준히 축적해 온 덕분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은 9월 4∼21일 3주간 개관 페스티벌을 연 뒤 10∼11월, 내년 3∼5월 5개월간의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한 상태다. 2013년부터 2015-2016시즌까지 3년간 운영비와 제작비 등으로 80억원이 책정됐다. 하지만 하드웨어인 극장시설과 소프트웨인 프로그램 모두 아시아예술극장의 향후 행보를 밝게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현실적인 극장으로 설계되지 않은 극장=아시아예술극장의 1120석 규모 가변형 대극장(극장1)과 518석 중극장(극장2) 시설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작지 않다.
대극장은 기존 서구 극장에서 일반적인 프로시니엄(액자형) 무대 대신 실험적인 비정형 복합장르를 위한 가변형 공간이다. 특히 한쪽이 개·폐형 유리벽으로 돼 있어 빛과 소음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유리벽에 암막(暗幕)을 설치해 빛은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게 됐지만, 소음 문제는 여전히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애매한 극장이 만들어진 것은 아시아예술극장의 초기 목표가 공연 창작과정을 공개·유통·판매하는 ‘팩토리 숍(factory shop)’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2006∼2007년 실시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 아시아 아트플렉스-아시아 공연예술 공동창작 워크숍’ 등 전당의 초기 자료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 공예, 패션 분야에서 많이 보이는 팩토리 숍은 작업장을 공개하고 제조과정을 보여준 뒤 제품까지 판매하는 곳이다. 프로시니엄 무대로 규격화 할 수 없는 아시아 공연예술의 미학을 보여주고 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전당 전체를 설계한 건축가 우규승은 아시아예술극장을 컨벤션 센터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가변형으로 지어진 대극장은 본격적인 운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극장 내부를 2∼3개로 분할 가능해 공연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소음 탓에 시간대를 다르게 하지 않으면 여러 공연이 불가능해 보인다. 무대세트 반입구의 경우 너무 작게 만들어졌는데, 다행히 객석 쪽에 있는 개·폐형 유리벽을 열어 세트를 넣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개관 이후 대관을 위해 뒤늦게 바닥에 오케스트라 피트를 파서 만들기도 했다.
중극장은 원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계획됐으나 중간에 프로시니엄 무대를 갖추고 음향시설을 제대로 구비한 극장으로 변경됐다. 다만 대극장을 설계하고 남은 공간을 활용하다 보니 백 스테이지가 극히 좁다. 아시아예술극장 관계자는 25일 “전당 설립에 처음 관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서 중도에 어떤 변경 과정을 겪었는지 알기도 어렵다”면서 “극장 운영 전문가들이 초반부터 개입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실험 예술과 지역 관객 눈높이의 격차=아시아예술극장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성희 감독이 프로그래밍한 작품들만 보면 칭찬받을 만 하다. 그간 유럽이 일방적으로 이끌어온 세계 공연예술계에서 아시아 공연예술의 담론을 구축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시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나온 이런 움직임에 주목한 구미 극장 및 축제 관계자 180여명이 페스티벌 기간 자비로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실험적인 예술로만 극장을 채울 수는 없다. 게다가 광주는 광역도시 중에서도 공연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곳으로 꼽힌다. 개관 페스티벌은 아시아예술극장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티켓 판매에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이후 시즌 프로그램은 마케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아시아예술극장이 개관 전에 제작했던 공연 가운데 유료 티켓을 판매한 작품의 경우에도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울러 시즌 프로그램만으로는 장기 공연을 할 수 없어 극장을 활발하게 운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문체부는 극장 가동율을 높이기 위해 CJ E&M에 뮤지컬 제작 및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문체부 예술국장 출신으로 지난 8월초 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에 임명된 방선규씨는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체부는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등 국립예술단체에 10∼12월 아시아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대부분 단체는 촉박한 일정을 들어 공연하기 어렵다는 회신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9월 개관 페스티벌 기간에 아시아예술극장 바로 위 민주광장에서 대중적인 무료공연들이 잇따라 열릴 계획이다. 전당과 광주시 측에서 KBS 전국노래자랑과 농악경연대회 등을 유치한 것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은 소음에 취약한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이 이들 행사의 영향을 받을까 걱정하고 있다.
특히 극장 운영을 놓고 김 감독과 전당의 입장이 일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5월 김 감독의 임기가 끝난다. 극장의 방향성이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예산과 운영 조직이 단단하게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감독은 “이제 갓 태어난 아기 같은 아시아예술극장이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몇 년간 꾸준히 지원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며 “관계자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좀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어떤 식으로 메울지가 아시아예술극장의 최대 숙제다.
광주=글·사진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이상과 현실의 간극’ 확인한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입력 2015-08-31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