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돌직구 외교’ 성패는 지금부터

입력 2015-08-31 00:30

박근혜 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대외정책의 키워드는 이른바 ‘신뢰외교’다. 상호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협력 관계를 한층 발전시켜 나간다는 게 신뢰외교의 요체다. 대외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다는 의미에선 평가받을 수 있지만 자국 이익을 위해 합종연횡도 불사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도외시한 기조라는 비판도 받아 왔다.

어떤 이는 박근혜정부의 외교 스타일을 시쳇말에 빗대 ‘돌직구 외교’라고도 부른다. 카운터파트가 엄연히 존재하고, 양자 관계는 만고불변의 원리가 적용되는 게 아닌 만큼 때론 상대방을 어르고 달래는 식의 ‘변화구’가 필요한데도 언제나 직구로만 정면 승부하는 스타일이 문제라는 것이다. 대외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런 부분에서 비롯됐다.

이런 박 대통령의 외교 철학이 남북관계에 반영된 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다. 남북 간 꾸준한 신뢰 형성을 통해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며, 통일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 전반기 남북관계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도 못한 채 2년6개월 내내 꽉 막혀 있었다. 개성공단 폐쇄, 당국회담 무산 등을 맞을 때마다 박 대통령 특유의 원칙론이 투영된 ‘돌직구’ 스타일도 전문가들에게 꽤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북 특사, 비선 접촉 등을 할 법한데도 당국 간 공식 대화만 밀고 나가는 데 대한 답답함도 있었던 탓이다.

장기간 대화 부재 속에 한때 정면충돌 위기까지 갔던 남북관계가 모처럼 대화 국면으로 돌아섰다. 극적으로 성사된 남북대화의 모멘텀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우리의 대화 제의를 내내 거부하던 북한이 먼저 만남 제안을 한 것이나 지뢰 도발에 어떤 식으로든 유감을 표명해 온 것은 북측도 조금이나마 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도 꼬인 남북관계를 임기 후반기에 대화 국면으로 돌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점 또한 절묘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남북 합의를 언제까지 지킬지, 또 대화를 계속 이어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은 이미 여러 번 남북 간은 물론 국제사회와의 합의를 파기한 전례가 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은 남북 합의 파기 이유의 단골 메뉴다. 북한은 또 ‘대북 영양 지원 및 핵·미사일 프로그램 모라토리엄’을 골자로 한 2012년 북·미 ‘2·29합의’도 한 달여 만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도 했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외치며 미국과의 양자대화에 집착하던 그간의 행태를 감안하면 대단한 아이러니다.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남북관계의 진전과 성과물 도출을 위해 애써왔던 것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치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2년6개월 만에 마련된 대화의 모멘텀을 길게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는 인내와 뚝심이다. 남북 간 신뢰는 어떻게 쌓을 것인지, 교류와 협력은 또 어떤 식으로 꾸준히 이어나갈 것인지, 또 ‘도발-대화-보상’의 악순환은 과연 제대로 끊을 것인지 전략과 인내를 갖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의 ‘돌직구 외교’ 스타일은 임기 후반기를 막 시작한 시점에 남북관계에서 일단 어느 정도의 효과는 거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성패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남은 2년6개월의 임기 후반기, 남북관계만큼은 대결과 대치가 아닌 지속적인 대화 국면을 기대해 본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