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백합 엔딩

입력 2015-08-31 00:10

사실 하나. 2007년 3월 30일 한신건영 자회사의 국민은행 계좌에서 액면금 1억원의 자기앞수표 한 장이 발행됐다. 사장 한만호씨의 지시를 받은 경리부장은 당일 수표 1억원과 현금 1억5000만원, 미화 5만 달러를 마련했다. 2만7900원짜리 여행용 가방도 구입해 돈을 담았다. 한씨로부터 사용처를 확인한 경리부장은 장부에 ‘접대비/의원/현금/300,000,000’이라고 기록했다. 1억원 수표는 2년쯤 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동생이 사용하면서 행방이 드러났다. 동생이 2009년 2월 23일 아파트 전세금으로 집주인에게 건넨 1억8900만원에 한씨의 수표가 섞여 있었다.

사실 둘. 2008년 2월 27일 한 전 총리는 한신건영 1차 부도 충격으로 일산병원에 누워 있던 한만호씨를 병문안했다. 이튿날 한 전 총리의 보좌관이 한씨에게 전화를 걸어 “2억원이 준비됐으니 가져가라”고 말했다. 보좌관은 집으로 찾아온 한씨 운전기사에게 검은색 비닐봉지 2개를 줬다. 각 봉지에는 현금 1억원씩 들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봉지 1개를 한신건영 사무실로, 1개는 한씨 어머니 집으로 배달했다. 어머니는 ‘어디 둘까’ 고민하다 부엌 냉장고 옆 빈 공간에 봉지를 놓고 그 위를 다른 봉지로 덮어뒀다. 그날 오후 한 전 총리와 한씨는 30여초씩 두 차례 통화했다.

동생 전세금으로 나간 1억원 수표와 보좌관이 반납한 2억원은 기어이 전직 총리를 쓰러뜨린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됐다. 13명의 대법관 전원이 최소 3억원 수수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봤다.

그럼에도 한 전 총리는 사법부를 향해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나는 무죄”라고 외쳤다. 혹여 그의 역사는 군사정권과 싸우며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던 시대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구치소까지 찾아와 순결·청렴의 꽃 백합을 건네는 지지자들에게 차마 ‘대모(代母)의 이면’을 인정하긴 두려웠던 걸까.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의 백합은 아직도 피어 있습니까?”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