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이 없어진다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1982년 입사해 2009년 퇴사할 때까지 27년간 ‘제일모직맨’으로 살아온 차모(59)씨는 삼성물산과 통합돼 제일모직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28일 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지난 7월 17일 주주총회에서 통과됐고, 9월 1일 삼성물산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제일모직은 2013년 11월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로 매각했고, 2014년 7월 삼성SDI로 흡수 합병됐다. 이후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이라는 사명을 써왔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에 통합됨으로써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설립 후 2년 만인 1954년 세운 제일모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제일모직 사명은 오랜 기간 삼성의 대표 브랜드로 사용된 만큼 보전조치를 통해 추후 사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사명을 바꾼 다음에도 이전의 사명을 해외법인이나 제품 브랜드명으로 계속 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대상그룹의 ‘미원’이다. 1956년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로 설립한 후 1962년 미원㈜으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미원그룹으로 성장했다. 1997년 대상으로 사명을 바꾼 뒤에도 해외법인은 여전히 ‘미원’이란 사명을 사용하고 있다. 1973년 대한민국 플랜트 수출 1호로 기록되는 미원인도네시아 공장은 여전히 ‘미원인도네시아’로 법인명을 유지하고 있다. 1994년 진출한 베트남 법인명도 ‘미원베트남’이다. 순수 국내 자본과 독자 기술로 만들어낸 국내 최초 조미료인 미원도 여전히 그 이름으로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2892억원어치가 팔렸다.
‘농심’처럼 사명을 바꾼 뒤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업도 있다. 1965년 설립 당시 사명은 롯데공업㈜이었다. 요즘 ‘왕자의 난’으로 주목받고 있는 롯데그룹의 신동빈-동주 형제의 삼촌이자 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회장이 설립자다. 1975년 농심라면이 히트하면서 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바꿨다. 농심 관계자는 “창업 당시부터 롯데그룹과는 관계가 없었다”면서 “농심에는 롯데의 DNA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기획] 제일모직 사라지지만 이름은 남긴다?
입력 2015-08-29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