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고속터미널·백화점·영화관·갤러리 손 대는 사업마다 대박 ‘천의 얼굴’

입력 2015-08-31 02:07
제주 탑동시네마 뮤지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그는 “성산포의 작업실 인근 바다에 떠내려 온 쓰레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환상에 시달렸다. 그걸 형상으로 만들었느니 꼭 나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위 사진은 꿈을 강조한 카페에 걸린 작품. 아래는 이번 개인전 ‘길은 멀다(The Road is Long)’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캔버스에 시멘트와 크레용으로 만든 추상 작품이다.
"그 에너지 원천이 정말 궁금해요?"

지난 22일 제주시 탑동 아라리오의 '탑동시네마' 뮤지엄 5층 카페. 10년 넘게 버려진 극장, 모텔, 자전거 가게를 리모델링해 아라리오가 세운 4개 미술관군(群) 허브에서 명지대 문화유산연구회 회원 30여명이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강사로 나선 이는 '천의 얼굴'을 가진 미술관 주인, 아라리오 김창일(64) 회장이다.

1978년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어머니로부터 천안고속터미널 매점을 물려받았다. 이후 고속터미널 사업을 성공시킨 뒤 야우리백화점을 짓고 10개의 멀티플렉스영화관을 운영하며 유통으로 진출했다. 아울러 세계 200대 컬렉터로 꼽히고 있고 서울과 천안, 중국 상하이에 아라리오갤러리를 세웠다. '씨킴(Ci Kim)'이라는 예명으로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가 숙원이었던 미술관 꿈을 현실화한 지 딱 1년이 됐다. 그는 이날 비밀 하나를 털어놨다.

"사실 어릴 적 자폐기가 있었어요. 학창시절 소풍 가서 밥도 혼자 먹었습니다."

#자폐, 양면의 얼굴

“뭔가에 빠지면 답을 얻을 때까지 헤어나지 못했어요. 그게 심해 사회에 나오면 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고요. 지금도 빠져들까 무서워 골프도, 스마트폰 문자도 꺼립니다. 덕분에 힘의 낭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타고난 경영자 자질도 이와 무관지 않다. 대학 때 주식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고, 퇴락해가는 지방도시 터미널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내겐 늘 등대 같은 역할을 하는 글귀가 있다”면서 “저 글귀를 보라”고 말했다. 그가 가리킨 카페 벽면에는 ‘꿈 없이는 살 수 없다(cannot live without a dream)’란 글씨를 LED로 만든 오브제 작품이 걸려 있다. 직접 만든 것이다. 미술관은 김창일에게 꿈의 실현이었던 것이다.

#컬렉션 그리고 미술관

30대 중반에 시작한 첫 컬렉션은 동양화였다. 고교가 근처여서 인사동과 친근했고 자연스레 청전 이상범, 남농 허건의 그림을 구입하게 됐다. 그러다 현대미술로 옮겨왔다. 그는 “현대미술이 더 맞았던 것 같았다. 백화점 사업을 한 것도 그런 성향을 더 갖게 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컬렉션을 취미생활로 치부합디다. 제겐 고객을 위한 것이었어요. 수십 억 원을 주고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사는 건 우리 고객 수준이 이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동시대미술을 사는 이유는 또 있다. 피카소는 비싸니 값이 덜 비싼 ‘영(young) 피카소’를 사기 위해서다. 안목을 키우기 위해 해외 아트페어와 전시장을 자주 찾고, 하루에 30분 이상을 미술 관련 책을 읽는다.

1980년대 초반 미국 LA의 모카(MOCA)와 뉴욕 인근 디아 비콘 뮤지엄을 봤을 때 그의 가슴은 무지개를 본 것처럼 뛰었다. 그때부터 동시대미술작품으로 채운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키웠다. 30년 넘게 모은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수보드 굽타 등 첨단 현대미술 작품 3700여점 중 일부가 지난해 9월과 10월 개관한 서울 공간사옥 뮤지엄과 제주의 4개 뮤지엄에 진열돼 있다.

#제주 탑동, 보존과 개발의 이중주

왜 제주일까. 그것도 쇠락해가는 구도심에…. 조선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김만덕의 삶이 어린 항구가 코앞이지만 모텔과 함께 사창가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탑동은 말 그대로 탑(Top)입니다. 제주가 갖는 천혜의 자연이 보존돼 있으면서 매립이 이뤄진 곳이라 개발도 가능하지요. 동문시장처럼 문화히스토리도 있어요.”

하지만 탑동시네마를 사들일 때만해도 10년 넘게 방치돼 비둘기 똥이 곳곳에 널려 있는 노숙자들의 거처였다. 1999년 제주 최초 복합영화관으로 들어섰으나 2000년대 초반 롯데시네마, CGV 등이 신도심에 들어서면서 쇠락했다.

아라리오 제주 뮤지엄 4곳은 외관이 모두 빨강이다. 구도심에 활력을 주겠다는 의도이지만 공항에서 서귀포로 직행하는 관광객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그래서 미술관 옆에 9900원짜리 왕돈까스 가게를 열었다. 미술관이 오래 가려면 주변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모두 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장기적으로 미술관을 3, 4개 더 지을 계획이다.

#미술, 작업이자 치료

1999년 오십을 앞둔 나이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굳이 작가까지 해야 했을까.

“안 그랬더라면 정신병원에 갔을 그런 시점에 작업을 했습니다. 사물을 보면 그게 살아 움직여요. 환상이 보이는 것인데, 머릿속 생각을 작품으로 표출하니 치유가 되더라고요.” 미술관 3층에는 그의 회화, 설치 등이 전시돼 있다. 버려진 스티로폼, 소쿠리, 조개 등으로 만든 작품은 자화상이다.

“9월 1일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8번째 전시를 합니다. 꼭 오세요.” 이번 개인전에는 제주의 미술관을 리모델링할 때 나온 시멘트, 합판, 철가루 등 폐자재로 만든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는 11월 1일까지다.

제주=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