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마스크’ 폭스, 독수리 날게 하다

입력 2015-08-28 02:07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선수 제이크 폭스가 2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홈경기 6회초부터 포수로 변신해 활약하고 있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로 323경기를 뛴 경험이 있는 폭스는 이날 연장 11회까지 6이닝 동안 김민우, 권혁과 배터리를 이뤄 한화의 10대 9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가 포수로 나선 건 2004년 한화의 앙헬 페냐와 2014년 넥센 히어로즈의 비니 로티노에 이어 세 번째다. 스포츠조선 제공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선수 제이크 폭스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방인에게 낯선 포수 포지션을 완벽히 소화해 팀이 더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2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 경기는 폭스의 독무대였다. 폭스는 2회말 대타로 출전해 우익수로 뛰었다. 그런데 이후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김성근 감독은 선발 안영명이 아웃 카운트 한 개도 잡지 못하고 6타자 연속 안타를 내주자 투수를 교체하면서 포수도 조인성에서 정범모로 바꿨다. 3-8로 추격하던 5회말 2사 1, 2루에서는 포수 정범모 타석에 외야수 요원 정현석을 투입했다. 한화의 1군 엔트리(27명)에 포수로 등록된 선수는 단 2명이었다.

이에 김 감독은 6회초 수비부터 폭스를 포수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폭스에 앞서 외국인 선수가 포수로 나선 건 2004년 한화의 앙헬 페냐와 2014년 넥센 히어로즈의 비니 로티노 둘 뿐이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폭스는 경기가 연장 11회까지 이어져 6이닝 동안 김민우, 권혁과 배터리를 이뤘다. 폭스는 김민우에게 커브와 슬라이더, 포크볼 사인을 냈고 정확하게 잡아냈다. 볼 배합에서도 10회초 1사 1, 2루에서 권혁에게 슬라이더를 던지게 해 병살타를 유도했다. 폭스가 포수 마스크를 쓴 동안 한화의 실점은 단 1점에 불과했다. 폭스는 또 연장 11회초 박한이의 도루를 잡아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폭스는 공격에서도 6타수 4안타(1홈런) 1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한화는 김태균의 끝내기 안타로 10대 9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사실 폭스의 포수 투입은 김 감독의 전략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주부터 폭스가 본격적으로 포수 훈련을 했다. 기본기는 있는 포수였다”며 “실전에서 포수로 기용할 때가 오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이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폭스는 페냐와 로티노보다 포수 경험이 많다.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로 323경기를 뛰었고 외야수로 151경기, 1루수로 318경기에 나섰다.

김 감독은 투수가 흔들릴 때 포수 교체로 분위기를 바꾸고 대타 작전을 활발히 펼친다. 포수와 외야수를 넘나드는 폭스는 한화에 큰 힘을 실을 수 있다. 김 감독은 27일 부진했던 정범모를 2군으로 내려 보냈다. 조인성과 폭스 두 포수로 경기를 운영하겠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라인업을 짤 때 폭스를 포수로 투입하는 것도 머릿속에 둬야 할 것 같다”며 “경기 중 조금 더 다양한 작전도 펼칠 수 있다”고 흐뭇해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