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발생한 생방송 기자 총격 살해 사건이 범행의 잔인성을 넘어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 충격을 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없앤 현대 문명의 총아가 삐뚤어진 범죄자의 자기과시와 범죄 정당화 논리를 수만명에게 제약 없이 전달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다.
미 언론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오전 버지니아주 베드포드카운티에서 발생한 지역방송국 WDBJ TV기자와 카메라기자를 살해한 베스터 리 플래내건(41·작은 사진)은 몇 시간 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살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올렸다.
한 손에 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비디오카메라를 든 것으로 보이는 화면에는 그가 인터뷰를 하는 WDBJ의 앨리슨 파커(24)와 애덤 워드(27) 기자에게 다가가 파커와 오른손에 든 총을 한 화면에 잡고서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플래내건은 2년 전 WDBJ에서 해고당했다.
플래내건은 생방송이 진행될 때까지 기다려 살해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도록 한 것을 넘어 경찰에 쫓기면서도 자신이 직접 찍은 살해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잇따라 올렸다. 플래내건이 기자 시절 사용했던 가명인 브라이스 윌리엄스라는 이름의 트위터 계정에는 “총격 장면을 찍었으니 페이스북을 보시오”라는 내용 외에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트윗도 올라와 있었다.
기술정보 회사인 엔드포인트 테크놀로지스 어소시에이츠의 로저 케이 대표는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참수 장면을 유포하는 데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지만 개인이 사적인 이유로 이런 충격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라며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제프리 리버만 컬럼비아대 정신과 교수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총을 쉽게 가질 수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런 것들을 즉각적으로 퍼뜨릴 수 있다는 우리 문화의 특징들을 모두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경찰이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신원이 공개돼 이름이 널리 알려졌을 때 동영상이 올라왔다며 이 범행은 최대한 널리 퍼트리고 최대한의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교묘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흑인인 플래내건은 방송기자로서의 소질을 인정받았지만 성격 장애로 여러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기자를 꿈꾸며 남부의 여러 지역 방송을 전전했던 그는 WDBJ에 3년 전 입사했으나 1년 만에 동료들과의 불화 등 ‘분열적 행동’으로 해고당했다.
플래내건은 해고되자 평등고용추진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는데, 직장동료 대부분이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에 살해한 파커와 워드 기자에 대한 불만이 포함돼 있었다. 파커와 워드는 모두 백인이다.
특히 그는 지난 6월 발생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과 2007년 한인 학생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주 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을 범행 동기로 꼽기도 했다.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문제까지 끌어들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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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8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