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다음 달 3일 중국 베이징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열병식 참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박 대통령과의 첫 한·중 정상회담 이전부터 ‘오랜 친구’로 불러왔다. 2005년 첫 만남 이후 지속적인 신뢰와 배려로 한층 가까워진 양국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관은 두 정상 간 ‘라오펑유’ 관계를 한층 공고히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기까지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명실상부한 ‘정열경열(政熱經熱)’ 상태로 발전한 양국 관계 외에 시 주석과의 두터운 신뢰 관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7일 “최근의 한·중 양자 관계는 물론 두 정상의 오랜 관계, 여기에 우리 독립운동의 주무대가 중국이라는 것 등 독립투쟁의 역사를 공유한다는 점이 감안됐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13년 첫 한·중 정상회담에서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 기념표지석을 설치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청에 아예 안중근기념관 설립으로 ‘통 크게’ 화답했다. 다음 달 4일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도 중국 정부의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졌다. 2013년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 우리 정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선포로 대응한 뒤 이례적인 중국의 조용한 반응 역시 한층 가까워진 양국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외교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 대통령의 이번 전승절 참석은 또 한·중 양국 정상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사실상 공동보조를 맞추는 식으로 대일(對日) 압박을 하는 측면도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관 여부를 놓고 찬반양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의연하게 임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중국의 동북아 패권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해 먼저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최근 “무슨 일이 외교적으로 생겨 ‘또 우리나라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겠네’라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국격에도 맞지 않고 패배식이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또 다음 달 2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도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해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다시 한 번 적극 요청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중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온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논의에도 힘을 싣게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행사가 열리는 베이징 천안문 성루에서 시 주석과 나란히 앉아 열병식을 참관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외국 지도자 중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는 얘기다. 외교 소식통은 “박 대통령은 성루 위에서 시 주석 왼쪽에 서고 푸틴 대통령이 오른쪽에 서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또 밀착된 한·중 관계와 얼어붙은 북·중 관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천안문 성루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1950년대에 최소 2차례 올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등 당시 중국 지도부와 함께 열병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급속하게 변화된 역학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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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8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