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한 백화점의 여성우선주차장. 운전대를 잡은 서모(34·여)씨의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주차가 서툴러 머뭇대자 뒤따르던 남성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며 재촉했다. 서씨는 ‘여성우선주차장인데 왜 남자가 주차하려 하는지’ 의문이 들어 주차관리원에게 물어봤다. 남성도 주차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공영주차장의 여성우선주차 구역은 관광버스와 화물차가 줄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t 트럭을 주차한 백모(27)씨는 “출입구와 가까워서 평소에도 이곳에 차를 댄다. 제재를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주차관리원 김모(47)씨는 “주차장 이용객이 대부분 남성인데 여성우선주차장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성우선주차장은 2009년 여성이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를 만든다며 도입됐다. 서울시는 조례를 제정해 30면 이상의 신규 주차장은 10% 이상을 여성우선주차장으로 설치토록 했다. 27일 현재 서울시내 1620곳에서 여성우선주자창이 운영되고 있다. 분홍색 주차구획선과 치마를 입은 여성 표시가 여성우선주차장임을 알려준다. 다만 어디까지나 ‘우선’일 뿐 ‘전용’이 아니다. 남성 운전자가 이곳에 주차해도 막을 방법은 없다.
여성우선주차장은 도입 당시부터 “실효성이 없다” “남성 차별적 정책이다”라는 논란에 시달렸다. 정영애 서울사이버대 부총장은 “여성우선주차장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시각이 드러난 것”이라며 “주차구획선으로 남녀를 나누는 방식보다 성별에 상관없이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배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도 정작 임산부를 배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에 새로운 임산부 배려석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좌석과 등받이, 바닥을 모두 분홍색으로 꾸몄다. 바닥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란 문구도 새겼다.
다음 달 출산하는 정효정(36·여)씨는 “승객들이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나를 주목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며 “바닥의 문구도 임산부 그 자체가 아니라 태아 때문에 배려 받는 듯한 인상을 줘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분홍색’과 ‘치마’가 성관념을 고착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여성민우회 측은 “분홍색 치마는 여성에 대한 성관념을 획일화할 수 있어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관계자는 “분홍색이 눈에 쉽게 띄어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며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신훈 기자 zorba@kmib.co.kr
주차장… 임산부석… 유명무실 여성우선 정책
입력 2015-08-28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