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미, 아비도 없냐. 부모가 그리 가르치던?” “나이를 어디로 드셨나? 곱게 늙어야지.” “어린 계집이 싸가지 없이….” “한심한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시정잡배의 말싸움이 아니다. 이 나라 국어교육을 토론하러 나온 ‘교육자’들이 뱉은 말이었다. 24일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공청회에서 한자를 병기하자는 측과 반대하는 측은 이런 막말과 고성에 몸싸움까지 벌이며 추태를 보였다.
빌미를 제공한 쪽은 행사를 주최한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와 후원한 교육부였다. 교육부는 한자병기 반대 측에 “한자병기를 논의하자”며 공청회장으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초등학교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란 현수막을 공청회장에 걸었다. 반대 측은 졸지에 한자교육 강화를 논의하는 자리에 나온 꼴이 됐다. 피켓을 들고 물리력으로 공청회를 방해했다. ‘추태의 장’을 교육부가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측은 현수막이 철거된 뒤 어렵사리 토론을 시작했지만 ‘룰’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했다. 상대 패널이 발언하면 큰 소리로 끼어들거나 야유를 보내기 일쑤였다. “(패널)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고, 사회자가 제지하면 “사회나 똑바로 보라”고 소리쳤다.
반대 측은 진보 성향의 교육자와 한글전용론자가 상당수였다. 진보 교육계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한다. 이들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토론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해진다. “우리말 글을 사랑하자”면서 나이 지긋한 상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한자 학원에서 돈 받았느냐”며 깎아내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자교육을 강화하자는 쪽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자교육은 곧 인성교육’이라며 한자를 배우면 자연스레 올바른 인성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론의 장에 나와 온갖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게 한자공부로 깨우친 ‘인성’인지 의문이다. 한 패널은 발언권을 얻자 느닷없이 ‘박근혜 대통령 찬양론’을 펼쳐 격앙돼 있던 진보 진영을 자극해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앞으로 민감한 교육 현안을 다루는 공청회나 토론회가 줄을 잇게 된다. 다음 달에는 문·이과 통합을 시도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가 있다. 과목별로 릴레이 공청회가 열린다. 교육과정 개편은 교사·교수 등의 ‘밥그릇’과 직결돼 있다. 체면이고 품위고 다 내팽개치는 추태를 학생들이 보고 배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종=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
[현장기자-이도경] 교육 논하려면 품위부터 지켜라
입력 2015-08-28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