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90년전 간토 대학살… 데자뷰 같은 일본의 광기

입력 2015-08-28 02:39

1923년 9월 1일 간토(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안돼 도쿄 이곳저곳에서 “조선인을 죽여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칼과 톱을 든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달 가까이 학살이 계속됐다. 그런데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일본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작가 가토 나오키는 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반란을 일으켜 군대와 싸우고 있다” 등의 유언비어를 믿고 광기에 휩싸인 일본인 이재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당시 도쿄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와 같은 ‘대량학살의 도시’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도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과 같은 민족차별주의자들이 벌이는 혐한시위에서 “한국인을 쫓아내라”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등의 발언이 거침없이 나온다. 혐한시위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저자는 “그 거리에서 인종주의자들이 외치는 ‘죽여라’라는 함성이 90년 전 도쿄의 거리에서 울려 퍼졌던 ‘죽여라’라는 외침과 공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우정치가의 선동이 계속되는 21세기 일본에서 간토대학살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