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어느 토요일의 브로콜리

입력 2015-08-28 00:22

금요일 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별 일 없겠지만, 내일 저녁 약속은 취소하자. 그럴까? 그래. 군대 간 우리 아들 걱정돼서 너희들과 맛있는 밥 먹고 수다 떨 기분이 아니다. 친구의 목소리는 어둡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정말로 그렇게 믿으면서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늦은 시각까지 들어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된다. 문자를 보낸다. 오늘 들어올 거지?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거 아니지? 한참 있다가 아들에게서 답장이 온다. 지금 버스 타고 가는 중. 왜요? 전쟁 날지도 모른다잖아. 그러자 이런 답장이 날아온다. “ㅋ”

토요일 오전. 전쟁이 나면 수도와 전기가 끊긴다는데 생수를 사다 놓아야 하나? 가스도 끊기면 물과 쌀이 있다고 해도 밥을 지을 수 없잖아? 부탄가스를 준비해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들 끝에 물만 사기로 마음먹는다. 물이야 마셔버리면 되는 거니까.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여섯 개들이 생수 한 묶음을 산다. 라면 몇 개도. 그것들을 낑낑거리며 집까지 들고 오니,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토요일 오후. 저녁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 문을 연다. 감자도 있고, 당근도 있고, 양파도 있다. 저쪽 구석에 브로콜리도 눈에 띈다. 브로콜리에는 비타민C가 많다고 한다. 면역력 증강에도 좋고, 노화도 방지한단다. 다 좋은데 식구들은 브로콜리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카레 냄새는 강렬하니까 브로콜리 냄새를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콜리를 잔뜩 넣고 카레를 만든다.

토요일 저녁. 식구들이 하나둘 저녁 약속이 생겼다고 외출한다. 아, 나도 오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는데. 약속 취소한 것을 후회하며 혼자 카레를 먹는다. 브로콜리를 너무 많이 넣었나 보다. 카레 냄새와 섞여 거북한 냄새가 더 강렬해졌다. 색깔도 요상하고. 이런, 브로콜리 너마저. 나는 투덜거린다.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에 대해서도.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