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모험은 문 밖에 있다] 버스 타고 내려 걸어오기 그것은 일상에서의 모험!

입력 2015-08-28 02:42
퇴근시간인 오후 6시부터 출근시간인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어떤 모험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인근의 산에 올라 침낭 속에서 자는 것이다. 마이크로 어드벤처를 창안한 험프리스는 “비록 동네의 낮은 산이라고 해도 햇살이 퍼지는 아침을 느끼며 산꼭대기에서 일어나는 것은 한 순간이라도 세상을 균형감 있게 보게 하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말한다. 윌북 제공
모험 세계에 변화가 일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미답의 영토, 미지의 세계를 향하던 '익스트림(extreme)'의 시대가 저 멀리 밀려가는 중이다. 이 세계 안쪽으로 새로 들이치는 파도가 있다. '마이크로 어드벤처(microadventure)'가 그것이다. 퇴근 후 또는 주말을 이용해 집 근처에서 즐길 수 있는 작은 모험, 짧고 쉽게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속 모험을 뜻한다.

38세의 영국 남자 앨러스테어 험프리스는 마이크로 어드벤처의 창시자다. 그는 전형적인 모험가로 살아왔다. 4년간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일주했고, 대서양을 노만 이용해 건넜으며, 세계 최대의 모래사막을 걸어서 횡단했다. 2012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그를 ‘올해의 모험가’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명예를 가져다 준 것은 그동안 수행했던 극한의 모험들이 아니었다. 그가 2011년 이후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일련의 작은 모험들 덕분이었다.

험프리스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작은 모험으로 전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모험 활동을 자극하는 강연을 할 때마다 청중들은 자신들은 ‘보통 사람들’이고 나는 ‘모험가’라면서 구별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며, 그들도 그들 나름의 모험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모험은 문밖에 있다’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마이크로 어드벤처 가이드북이다. 험프리스가 직접 경험한 작은 모험들 가운데 38가지를 선별해 수록했다. 험프리스는 “여기에 실린 모험은 영국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정신은 세계 어디서든 적용 가능하다”고 말한다.

맨 처음에 나오는 ‘하루모험’은 지갑만 챙기면 준비 끝이다. 퇴근 후 대중교통 또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50㎞ 정도 떨어진 적당한 지점에서 내린다. 거기서 집으로 자전거 또는 도보로 가는 여정이 바로 하루모험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허기가 져서 거리낌 없이 길가 음식점에 들러 간식을 먹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고, 예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천천히 달리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게 되고 세상과 자신에 대해 미처 몰랐던 점을 발견할 것이다.”

두 번째는 ‘달밤의 산책’이다. 달이 뜬 밤에 마을을 벗어나 들판을 가로지르며 걷다가 충분히 걸었다고 생각되면 근처 역에서 열차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이 모험의 전부다.

‘현관문 앞에서 비박하기’도 있다. 신용카드만 들고 1박2일 주말여행을 떠나는 ‘쾌적한 신용카드 모험’도 있다. 숲 속에서의 하룻밤, 자전거 대회 참가하기, 하지의 짧은 밤 등산, 산 정상에서 바다까지 걸어서 여행, 섬 일주 여행, 고속도로 따라 걷기, 느리게 강에서 수영하기 등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모험들이 멋진 사진들과 함께 이어진다.

저자의 목적이 독자들을 집밖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꽤나 성공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당장 다음 달 동네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지고,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서 퇴근해볼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모험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이 작은 모험들에 모험의 본질적인 요소가 있을까? 혹시 늘 모험을 꿈꾸지만 매번 주저앉고 마는 현대인들을 노린 간편식 또는 모사품이 아닐까?

험프리스는 흥미로운 체험기를 들려주면서도 모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다룬다.

“분명한 것은 모험이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정신이며 편안한 영역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다. 열정과 야망, 열린 마음 그리고 호기심에 관한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는 모험을 절대시하고 신화화하는 것에 대해 명백한 반대를 표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모험의 본질을 좀 더 단순하고 소박한 것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모험에 깃든 엘리트주의를 제거한다. 특히 ‘어디를?’ ‘어떻게?’에 집중됐던 모험담을 ‘어떤 마음으로?’로 대체하고자 한다. 또 ‘도전’이나 ‘성취’라는 모험의 키워드를 ‘일상의 변화’ ‘삶의 재생’ ‘인간의 복원’ 같은 단어로 다시 쓰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모험은 “스스로 정신적, 육체적 또는 문화적으로 확장하는 행위”이고 “신선한 공기와 고독한 시간을 만나는 일”이고, “산을 오르고 강물에 뛰어들며 별 아래에서 자보는 경험”이다.

마이크로 어드벤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보통 장소에서의 모험을 창안해 냈다. 신화로 가득한 유구한 모험의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이런 다운사이징, 이런 전환이야말로 대단한 모험이었다고 기록될지 궁금하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