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눈 실핏줄 터져”… 남북협상 과정 긴장감 전해

입력 2015-08-27 02:40
“남북 긴장 문제로 나흘 동안 거의 잠도 못 주무셨을 텐데….”

김무성 대표의 인사말이 시작되자 새누리당 의원들 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로 모아졌다. 26일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고 인사했더니 박 대통령은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긴장과 초조함 속에 남북 고위급 접촉을 지켜봤음을 박 대통령이 에둘러 밝힌 것이다. 실제 청와대 내부에선 남북 고위급 접촉 기간 거의 잠을 못 잔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남북합의 하루 만에 여당 국회의원 전원을 초청하는 행사는 무리라는 의견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행사를 강행했다. 안보 문제가 해결된 이상 국정 후반기 ‘4대 분야 개혁’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추측된다.

박 대통령이 의원들에게, 또 헤드테이블에 함께 앉았던 지도부에게 전한 메시지도 4대 분야 개혁의 시급성과 연관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내년 총선 준비보다 이번 정기국회 안에 박근혜정부의 중점법안 처리를 위해 속도전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이에 여당은 한목소리로 4대 분야 개혁 완수를 다짐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님, 오늘 기분 좋은 날”이라며 “어제 (연찬회에서) 의원들 모두 모여 4대(분야) 개혁을 우리 당에서 반드시 뒷받침을 잘하자는 다짐을 단단하게 했다”고 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마무리 발언에서 “노동개혁, 경제활성화 등에 매진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고 주창했다.

박 대통령은 무거운 주제의 대화가 이어지자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썰렁 개그’로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오찬이 끝날 때쯤 김 대표가 역사 분야에 해박한 김희국 의원을 지목해 마이크를 넘겼고, 이에 김 의원이 “개혁이 성공하려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취지로 로마제국의 한 황제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오히려 분위기만 애매해졌다. 김 의원이 멋쩍어하자, 박 대통령은 과거 개그맨 최양락씨가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만났는데, 부시맨이 아니더라’고 했다는 ‘썰렁 개그’ 한 토막을 소개했고, 이에 의원들이 박장대소했다. 박 대통령은 또 “지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행사 막바지에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왔다”면서 “말레이시아 총리가 ‘이 노래가 나올 때 함께 말춤을 추자’고 하면 어떡하나 대단히 긴장했는데 다행히 춤추자고 안 해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80분간 계속된 비공개 오찬에서 건배사에 나선 서청원 최고위원은 “남북회담 결과가 대통령의 좌우명인 원칙의 승리였다”고 극찬했다. 마지막 건배자로 선정된 오신환 의원은 ‘여기저기’를 건배사로 꺼냈다. ‘여기저기’는 “국민 여러분의 기쁨이, 저희의 기쁨”이란 뜻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오찬에는 새누리당 의원 138명이 참석했다. ‘국회법 파동’으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참석했지만 박 대통령과 따로 조우하진 않았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