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는 가장 예민한 동물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참매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길들이기가 특히 어렵다. “참매는 악당이었다. 살생을 좋아하고, 길들이기 어렵고, 시무룩하고, 성미가 까다롭고, 이국적이었다.”
‘메이블 이야기’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성 역사학자 헬렌 맥도널드가 참매를 길들이며 보낸 여름부터 겨울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이블’은 헬렌이 키우는 참매의 이름이다.
여기에 두 개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사진기자였던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 뒤 헬렌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든다. 참매 길들이기는 그 슬픔 속에서 시작된 행위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자연을 누비며 매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다. 참매를 길들이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름난 매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천재 소설가였으나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참매 길들이기에 몰두했던 역사 속 인물 T. H. 화이트(1904∼1964)가 있다. 그는 아서 왕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소설 ‘돌에 박힌 칼’로 명성을 얻었으나 부모에게 받은 학대의 경험과 동성애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가 말년에 쓴 책 ‘참매’는 헬렌이 어릴 때부터 즐겨 읽고 매 훈련의 지침서로 삼은 책이었다.
저자는 세 개의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엮어가며 인간과 동물, 삶과 죽음, 상처와 치유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탐구한다.
헬렌은 매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깊은 상처를 치유하려면 야생 세계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치유했다.” 그것은 화이트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녀는 차라리 매가 되고 싶었다. “매는 또 내가 되고 싶은 모든 것이었다. 혼자이고 냉정하며, 슬픔에서 자유롭고, 인생사의 아픔에 둔했다.”
어둡고 조용한 방 안에서 매를 길들이며 아버지를 떠올리고, 화이트의 삶을 숙고하고,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그것은 모두 이미 과거에 속한 것이라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만 헬렌은 매를 매개로 그들과 길고 애처로운, 그러나 깊고 우아한 대화를 이어간다.
아버지를 잃고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 매를 길들이기 위해 애쓰는 헬렌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고 헬렌이 “저도 사랑해요 아빠”라고 말하는 페이지를 만날 땐 눈물이 날 뻔 했다.
“뭔가 아주 간절히 보고 싶을 때면 인내하고 기다려야만 한다고. 내 기다림에 인내심 따위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마법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손에 그 판지 조각을 쥐고 가장자리를 매만지자, 모든 슬픔은 다른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단출한 사랑이었다. 나는 판지 조각을 다시 서가에 넣었다. 저도 사랑해요 아빠. 내가 속삭였다.”
헬렌은 마침내 긴 슬픔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모든 게 변한다. 모든 게 움직인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이른다. 매를 길들이는 시간은 헬렌이 자기의 슬픔을 길들이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당신은 어떤가?’ 물으면서 슬픔을 견뎌나가는 시간,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되자마자 영미권 주요 언론들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논픽션에 주어지는 여러 상을 받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매를 길들였다, 가슴 속 슬픔도 길들어갔다
입력 2015-08-28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