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의 청소년 임신율이 유럽에서 최악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 나이에 아빠가 된 아이의 삶은 어떨까?”
‘어바웃 어 보이’ ‘하이 피델리티’로 국내에서도 팬층을 거느린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닉 혼비(58·사진)가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책 제목(원제는 스케이트보드 탈 때 꽈당 넘어지는 걸 뜻하는 ‘슬램’)이 말하듯 ‘고딩 아빠’ 샘이 좌충우돌 진짜 아빠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심각한 주제에 눌려 교훈조로 흐를 것으로 짐작하겠지만 샘을 화자로 내세워 고딩의 말투, 고딩의 사고방식으로 시종일관 유쾌하게 전개된다.
스케이트보드에 빠져 사는 열여섯 샘. 엄마는 그를 열여섯에 낳았고 한 살 차이 나는 아빠와는 이혼했다. 지금은 지방의회에서 반듯한 직장까지 잡았지만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엄마가 치렀어야 할 대가를 아는 그는 부모와 다르게 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나. 첫 눈에 반해버린 알리샤와의 관계에서 덜컥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만다.
“우리 가족은 늘 계단에서 미끄러진다. 아니, 대개 계단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헤맨다는 게 옳겠다”라는 그의 예감은 적중한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알리샤. “알리샤와 함께 있을 때라야만 비로소 삶은 시작되었다”고 했던 샘은 어느 사이 “나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이라고 토로하는 처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샘이 택한 건 도망치는 일이다. 문자가 겁이 나 핸드폰까지 바다에 던져버리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더 도망칠 곳이 없어서다.
“나는 안다. 내가 겁쟁이라는 걸. 그러나 누구나 겁쟁이가 될 때도 있는 법이다. 안 그래?”
소설은 이 지점에서 1년 후 미래를 체험하는 판타지를 결합시킨다. 알리샤와 살면서 누가 기저귀를 갈지 실랑이 하고 아기가 코고는 소리에 “루프가 내는 소리는 어쩐지 방 안을 평화롭게 했다”고 말한다. 태어날 아기 루프에 대해 “막다른 골목을 걷다가 기관총을 든 알카에다와 마주친 거”라고 말했던 샘으로서는 경이로운 변화다.
작가는 청소년의 성문제를 어떤 규제나 징벌로 다룰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윤리적이고 보건 위생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해소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무거웠다면 공감을 자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출간 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영국 정부는 성교육을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하는 정책을 시행했다고 한다. 청소년의 성과 임신, 출산은 한국사회에서도 더 이상 낯선 주제가 아니다. 박경희씨의 감칠 맛 나는 번역이 책의 맛을 한껏 살린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청소년의 性, 유쾌하지만 묵직한 울림
입력 2015-08-28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