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정신 좀 차려봐요.” 25일 오전 1시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거리에 술 취한 20대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검은 모자와 조끼를 입은 남성 1명과 여성 2명이 술 취한 남성에게 다가갔다. 특수부대원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 복장은 주변의 화려한 불빛, 요란한 음악과 어울리지 않았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힐끔힐끔 이들을 쳐다봤다.
곧이어 순찰차가 도착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박우학 경위는 세 남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술 취한 남성을 깨워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챙겼다. 박 경위는 “요즘은 부축해주는 척하면서 다 빼가요. 큰일 날 뻔했네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이 ‘3인조’는 왜 홍대 거리를 누비며 늦은 밤거리의 안전을 살피는 걸까.
“북한에는 ‘건전한 생활양식을 문란하게 만든 죄’가 있어요. 술 취해 쓰러져 자면 다음날 사람들 앞에서 자아비판도 해요. 예상치 못한 정치적 발언이라도 나오면 바로 체포되죠.”
3인조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오진하(51)씨가 입을 열었다. “북에 있는 아들도 20대 초반인데….” 오씨는 2003년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탈북했다. 그래서인지 밤거리를 살피며 ‘누군가의 가족’을 지키는 일이 뿌듯하다고 했다.
3인조는 홍익지구대의 자율방범대 ‘안심키퍼’다. 오씨는 지난 6월부터 안심키퍼로 뛰고 있다. 2012년 탈북한 전수련(21·여) 홍영화(21·여)씨도 합류했다. 안심키퍼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이창헌(50)씨가 경찰에 순찰을 돕겠다고 제안하며 시작됐다. 실향민 아버지를 둔 이씨는 평소 탈북자들과 교류해 왔고, 안심키퍼 얘기를 들은 오씨가 탈북 학생들과 참여한 것이다. 매주 세 차례 신고가 많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홍대 주변을 걷는다.
남의 일로 여겨도 그만인데 시간을 쪼개가며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묻자 전씨는 “나도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걸 되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홍씨는 “봉사도 하고 한국 사회도 배운다”고 덧붙였다.
자유가 넘쳐나는 홍대는 탈북자들에겐 낯선 곳이었다. 전씨는 이곳에서 ‘클럽’이라는 글자를 처음 봤다고 했다.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전씨는 “모두 같은 생각만 하는 북한에 살다가 개성이 뚜렷한 한국을 보면 다른 세상 같다”고 말했다. 순찰을 시작하기 위해 지구대를 나서는 홍씨는 “북에서는 분주소(파출소)에 들어가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이 정도면 한국에 많이 적응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난 며칠 첨예했던 남북 군사 대치와 전쟁에 대해 물었다. 오씨는 “북한은 나라 자체가 군대여서 준전시상황이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며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씨는 “어차피 사는 게 힘들어서 북한 젊은이들은 전쟁 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며 “전쟁 이후에 난처한 상황이 될까 불안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전쟁이 나면 3년 동안 먹을 식량이 바다 밑에 있다고 배웠다. 어차피 살 것도 없었지만 ‘사재기’라는 말은 한국에서 처음 들어봤다”고 거들었다.
순찰 중 만난 대학생 이수연(20·여)씨는 사연을 듣더니 “북한 출신인 줄 몰랐다. 용기 내 좋은 일을 해주시니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오전 2시가 돼서야 순찰은 끝났다. 어느덧 선선해진 날씨에 오씨는 “이게 딱 7월의 백두산 날씨다. 통일을 하려면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기획] “술 취해 쓰러져 자면 北선 자아비판”… 탈북자 3인이 본 한국 문화와 ‘남북 대치’
입력 2015-08-27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