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과로문화

입력 2015-08-27 00:41

얼마 전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왜 모두 그렇게 바쁜가?’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꽤 큰 기업 임원이 썼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해 내가 사용한 휴가를 반휴까지 싹싹 긁어 더하니 4주에 육박했다. 놀랍지 않은가. 나의 지난해는 유럽인처럼 럭셔리했다!” 이어진 내용은 미국의 ‘과로문화’와 ‘시간 빈곤’에 대처하는 요령이었다.

2013년 미국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788시간이다. 독일(1363시간) 덴마크(1438) 프랑스(1474)보다 300∼400시간 더 일했다. 호주(1663) 영국(1669) 캐나다(1708) 이탈리아(1733) 일본(1734) 등 어떤 선진국도 미국만큼 오래 일하지 않는다. 같은 해 미국인이 사용한 연평균 휴가일수는 16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무실에 들고 가는 테이크아웃 커피부터 점심을 해치우는 패스트푸드, 야근 후에도 쇼핑할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까지 장시간 근로를 위한 미국의 ‘발명품’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들어와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63시간. 미국보다 375시간이나 많고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지난 대선 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나온 배경에도 유럽이 등장한다. 당시 손학규 캠프의 손낙구 보좌관에게 국내 대기업 직원의 전화가 걸려 왔었다. “유럽에 출장 가면 다른 건 꿀릴 게 없는데 휴가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장기 휴가가 생활화된 그들의 바캉스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이 통화는 근로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자는 슬로건의 한 단초가 됐다.

미국인과 한국인은 왜 이토록 장시간 일하게 됐을까. 유럽인은 어떻게 두 나라의 부러움을 사게 된 걸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미국의 과로문화를 진단하며 ‘시간=돈’이란 미국 사회의 인식을 언급했다.

시간이 돈이란 말을 처음 한 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1748년 ‘젊은 상인을 위한 충고’란 글에 이렇게 썼다. “명심하라. 시간은 돈이다. 하루 종일 일해 10실링 버는 사람이 반나절을 놀면서 6펜스를 썼다면 그가 쓴 돈은 6펜스가 아니라 5실링 6펜스다.” 휴식을 택하면 일을 택할 때 벌었을 5실링을 날리는 셈이니 시간을 잘 쓰라는 충고였다. 훗날 경제학 교과서에 ‘기회비용’이란 용어로 실렸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의 시간이 비싸진다는 데 있다. 경제 규모가 커져 고소득 일자리가 늘어나면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한다. 하루 10만원 벌던 사람이 20만원 벌게 되면 반나절 쉬기 위해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은 2배가 된다. 시간을 돈과 결부시켜 생각하면 일 대신 휴식을 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기회비용을 모르지 않았을 유럽인의 삶이 미국인보다 여유로워진 배경을 이코노미스트는 1970년대 갖춰진 노동·복지 정책에서 찾았다. 노동조합이 강했던 유럽 각국은 근로시간에 상한선을 두고 휴일을 의무화하는 정책 방향을 택했다. 근로자들이 추가 임금 대신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인이 시간 대신 임금을 택해야 감당하는 의료보험·연금·대학교육 등을 정부가 챙겨주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노동개혁을 하반기 어젠다로 삼았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포함돼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려 한다. 이 근로기준법 개정이 과연 한국인의 저녁을 되찾아줄 수 있을까. 한국의 근로자와 기업은 그에 따른 기회비용을 부담할 준비가 돼 있나. 인식의 전환과 여러 정책의 뒷받침이 필요한 문제인데, 정부의 관심은 온통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쏠려 있는 듯해 걱정이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