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국제축구학교, ‘北 축구〓군대식’은 옛말… 유럽식 공격·수비에 창조성 강조

입력 2015-08-27 02:39
2013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로 건립된 평양국제축구학교 인조잔디구장에서 여학생들이 기본기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물 복도에 붙어 있는 영어 단어 시험 성적표.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축구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목도 가르치며,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20일 태국 방콕에 위치한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 결승전.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뛰던 이승우(17)와 장결희(17)를 앞세운 우리 팀은 1대 2로 역전패를 당했다. “북한 유소년 축구가 언제 저렇게 성장했나?” 한국 축구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제2회 국제 유소년(U-15) 축구대회를 취재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평양국제축구학교가 북한 유소년 축구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로 2013년 설립됐다. 개교 당시 80명이던 정원은 현재 160명으로 늘었다. 7세부터 14세 과정까지 있으며, 전 학년에 걸쳐 매 학기 테스트를 통해 부진한 학생들을 걸러낸다. 빈자리는 각지에서 새로 선발된 유망주들로 채운다. 신체조건과 기술이 뛰어나면서도 머리가 좋고 성격이 적극적인 학생이 우선 선발된다. 교육은 연습경기보다는 기본기 위주로 이뤄진다.

과거 북한 축구는 조직력과 스피드 그리고 체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창조력이 결여된 ‘군대식 축구’는 세계무대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아시아 축구 강호였던 북한은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침체했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과감한 개혁을 모색했다. 공격은 스페인의 티키타카(짧은 패스로 볼 점유율을 높이는 전술), 수비는 독일의 효과적인 압박을 지향하는 게 이 학교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현철윤 교장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패스와 두뇌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도한다”며 “그라운드에 선수를 풀고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11명 선수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신의 두뇌를 돌려서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평양국제축구학교 선수들은 조별리그 3경기와 토너먼트 2경기를 치렀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뻥 축구’를 하지 않고 중원을 거친 패스 플레이만 시도했다. 이런 플레이를 펼친 결과 북한 U-15 국가대표팀이라고 할 수 있는 4·25체육단과의 결승전에서 1대 6으로 패했다. 지더라도 밀집수비와 역습축구를 하지 않고 원칙을 지킨 것이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축구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목도 가르친다. 복도 벽에는 학생들의 영어 과목 점수와 등수가 적혀 있다. 축구 이론 강의도 영어로만 이뤄진다고 한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협약을 맺은 해외 클럽은 매년 학교를 방문해 남학생 가운데 유망주들을 선발한다. 올해는 안정환이 뛰었던 페루자(이탈리아)가 입단 테스트를 치를 예정이다. 남는 학생들은 4·25체육단, 횃불, 기관차체육단 등에 입단해 기존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편입된다.

북한은 평양국제축구학교 졸업생들을 앞세워 10년 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