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8·25 공동보도문 발표를 지켜본 국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반응이다. 무박 4일에 걸친 협상 직전에는 상호 비방과 북한의 도발로 심각한 상황이 빚어졌다. 회담 결과를 놓고 충돌에서 대화로 반전을 이루었다는 평가에 남북관계 개선에 거는 기대가 더해진다. 반면 북한의 사과가 불충분하고 재발방지 약속이 없는 타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의 8월을 보내며 광복의 기쁨을 되새길 여유를 갖지 못했다. 평화의 소중함을 가슴 졸이며 깨달았다. 나의 안전과 겨레의 생존은 동전 앞뒤와 같다는 점도 깨달았다. 평화는 우리가 기르고 가꾸어야 할 꽃과 같다. 평화는 인류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자 인권의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 충돌 사태를 연출한 남북 정권은 겨레의 평화권을 위협하고 국제사회를 놀라게 한 점에서 내외에 유감 표명을 할 법하다. 이번에 벌어진 충돌과 대화의 롤러코스터는 우리가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8·25 합의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기 전에 우리의 존재론적인 역사의식이 막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8·25 합의는 전쟁 위기로 치닫던 긴장상태를 대화 분위기로 전환시킨 점에 일차적 의의가 있다. 나아가 도발과 비방을 삼가고 남북관계를 대화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점과 인도적 문제 해결과 민간 교류 활성화에 합의한 것이 성과다. 이는 25년 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연상시킨다.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대로 이행해 나가면 남북 평화번영과 통일의 길은 보장된다. 물론 8·25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합의 사항과 합의 이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한 아전인수식의 해석과 국내 정치적 이용은 삼가야 한다. 8·25 합의 이행을 바탕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의 과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남북은 당국 간 대화의 정례화와 군사 핫라인의 재가동을 이뤄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해나가야 한다. 국내 정치에서도 소통이 강조되지만 남북관계만큼 대화와 소통이 절실한 곳도 없을 것이다. 불신과 오해의 뿌리는 대화가 없는 가운데 무성해지는 편견 탓이다. 또 정전체제가 작동하고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은 가운데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군사적 신뢰 구축의 의미는 막중하다. 이것이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함께 다가올 첫 ‘당국회담’의 해결 과제이다.
둘째, 국내적으로 통일·외교·안보정책을 둘러싸고 활발한 소통과 민주적 의사결정이 증진돼야 한다. 사실 현 정부는 야당을 비롯해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데 미흡함이 없지 않았다. 이번 합의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남북 민간 교류는 상호 신뢰 조성은 물론 대내적으로는 민관협력을 촉진하고 국민적 여론 조성에도 기여한다. 다양한 시각과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도 폭넓게 청취해 정부 정책의 지지폭을 넓히고 협상력 제고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는 보다 과감한 자세로 통일외교를 전개해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주변 4강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균형적인 외교를 전개해 통일의 대외적 기반을 확충해나가야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확장시키고 민족의 미래에 대비한다는 시각에서 볼 때 통일외교는 남북협력과 선순환 관계에서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요컨대 8·25 합의는 평화주의적 남북관계의 출발로 삼을 만하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硏 연구교수
[시사풍향계-서보혁] 평화주의적 남북관계를 기대한다
입력 2015-08-27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