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합의사항 실천과 함께 남북관계 관리에 만전 기하라

입력 2015-08-26 00:50
남북이 사상 유례 없는 무박 4일의 담판 끝에 25일 6개항의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발표함으로써 북의 지뢰도발로 촉발된 일촉즉발의 위기는 일단 고비를 넘겼다. 남측은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북은 준전시상태를 해제했다. 정부가 북의 도발에는 그 이상의 보복이 따른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결과다. 예상외의 단호한 우리 측 대응에 놀란 북한이 무력도발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했다.

우리 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이번 ‘2+2 접촉’은 남북관계에서 대화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남북관계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건 언제나 대화였다. 이의 연장선에서 양측이 당국회담을 조속히 개최키로 하는 등 대화 기조를 확대, 발전해나가기로 한 것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진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지 못해서다. 북은 이번에도 주체가 없는 유감 표시에 그쳤다. 군사분계선 남측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데 유감을 표명했을 뿐 지뢰도발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다. 북은 매번 이런 식으로 넘어갔다.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도 그랬다.

진정성이 결여된 북의 유감표시는 “매번 반복되어왔던 도발과 불안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기대치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일부 보수진영은 ‘우리가 도발→협상→양보로 이어지는 북한 패턴에 말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는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가 관철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아전인수다. 자칫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일방이 100%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체제가 다르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기왕의 합의사항만이라도 차질 없이 이행된다면 ‘성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관건은 당국회담과 올 추석을 계기로 진행하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성사 여부에 달려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공동합의문은 한낱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리 남북정상회담’으로 불리는 이번 접촉에서 도출해낸 합의를 실천에 옮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북 접근법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칙이 합의를 이끌어낸 원동력이라면 그 합의를 유지하는 힘은 유연성에서 나온다.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한 공동보도문 6항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 조항은 남북 민간교류를 금지한 5·24조치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북한이 바라는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보다 큰 틀의 합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박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간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