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가 안고 있는 빚이 사상 처음 1100조원을 넘었다. 중국경제 악화, 미국 금리인상 예고 등 외부 악재로 경기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팔라지면서 우리 경제의 연착륙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전문가들은 건전성 규제와 소득증대 등의 대책을 통해 ‘경기부진 속 부채과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채 잔액·증가액 모두 사상 최대…부동산경기 활성화 정책이 주원인=한국은행은 25일 ‘2분기 가계신용’ 자료에서 대출과 판매신용(카드 사용액 등)을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1130조5000억원으로 전 분기(1098조3000억원)보다 32조2000억원(2.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전체 잔액과 전 분기 대비 증가액 모두 한은이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자료를 작성한 이래 최대치다. 지난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이 1035조9000억원인 점에 비춰 빚이 1년 새 100조원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한은 신병곤 금융통계팀장은 “기준금리 인하,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이로 인한 주택거래량 급증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가계 빚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내놓은 ‘2015년 2분기 부동산시장 동향 분석’에 따르면 2분기 전국의 주택매매 거래량은 34만743건으로 분기별 거래량으로 2006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대치였다.
◇악재 겹친 와중에 부채 급증은 경제 위기 불씨 될 수도…부채완화 대책 시급=가계부채 총량이 크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가계부채의 70% 정도는 소득 상위계층인 4∼5분위에 몰려 있어 빚을 갚는 데 문제가 없고, 아직까지 연체율도 0.5% 미만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금처럼 외부여건이 극도로 불안정해진 상황에서는 가계부채가 의외의 경제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낙관론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입장이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선임연구위원은 “대외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부채 대응에 소홀할 경우 취약계층이라는 약한 고리를 통해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부채 속도를 조정할 건전성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소득 정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 하락, 미 금리인상 여파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 등이 겹칠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불안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정부는 지난달 가계부채관리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DTI 강화 같은 핵심규제를 담지 않아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만 금리인상을 통한 선제적 대응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침체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높이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되 LTV, DTI를 엄격히 적용하고 일자리 창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경기활성화와 부채문제 해결에 도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빚방석에 앉은 한국인… 가계부채 사상 첫 ‘1100조’
입력 2015-08-2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