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위기와 협상

입력 2015-08-26 00:10

1962년 10월 22일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역사상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다. 미국은 핵 사용까지 가능한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단하라고 소련에 요구하며 해상봉쇄를 단행했다. 소련은 해상봉쇄선까지 16척의 선단을 들이밀다가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미사일 철거를 약속하고 선단을 되돌린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소련 핵잠수함은 핵미사일 발사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고, 미국은 핵 보복 계획을 세웠다. 핵전쟁 직전까지의 대치와 공식 대화, 정보기관끼리의 비밀 절충 등이 어우러지면서 3차대전 위기 상황은 11일 만에 끝난다. 소련이 먼저 도발했지만 역사는 미국의 승리로 기록한다. 이 사태를 계기로 미·소 간 핫라인이 1963년 개설됐고, 그해에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발효됐다. 이 조약은 아직까지도 불완전하긴 하지만 현재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으로 발전했다.

전쟁 중에도 대화는 세계 전사(戰史)에서 흔한 일이다. 공식적으로 최고의 경고를 내보는가 하면, 스파이들끼리 비밀 교섭도 하고, 거짓 정보도 흘린다. 승리를 위해 또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도 비슷하다. 위기 해소를 위한 대화를 하면서도 북한은 준전시상태 선포로 잠수함 등 3대 침투전력을 전방 배치했고, 남한은 최고 경계태세에 미군의 전략자산 배치도 흘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소집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군복을 입고 3군사령부를 방문했다.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술이다.

복잡한 게임이론을 단순화해 냉정하게 남북관계에 대입하면 위기 상황에서 남북한이 각자 이익을 위해 전략을 세우고, 행동하고, 그 행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끝에 일단 최적의 결과물(합의문)을 나눈 것이다. 판을 깨면 둘 다 손해라는 것을 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합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결과물을 요리해 나가는 전략과 실력이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