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지질구조가 주는 신비한 풍경
등대가 세워지기 전 고성의 동해안을 지나는 배들이 지표로 삼은 산이 있다. 운봉산(雲峰山·286.7m)이다. 현무암으로 된 이 산은 토성면 운봉리, 학야리 등 3개 마을의 넓은 들판에 주변 화강암 산지와는 달리 종을 엎어놓은 듯이 봉긋해 멀리에서도 눈에 확 띈다.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품에 다소곳이 안긴 아기산 같다.
운봉산의 들머리는 운봉리 용천사와 학야리 군부대, 미륵암 등 3곳으로 어디서나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학야리에서 오르면 정상까지 1시간 내외의 비교적 짧은 호젓한 산길로 빼어난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군부대 앞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산 중턱에 흘러내린 암괴류(巖塊流)는 산행의 또 다른 일미를 더한다. 주차장에서 약 15분 걸으면 나타난다.
고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생대 제3기 알칼리 현무암의 분포지역이다. 제4기에 형성된 철원과 제주도 등의 현무암에 비해 침식 정도가 심해 주상절리의 원형 뿐 아니라 주상절리가 무너져 형성된 암괴류를 함께 관찰할 수 있다. 기둥 돌들이 산 서편으로 즐비하게 흩어져 흘러내린 형상은 가히 장관이다.
암괴류는 전설을 품고 있다. 부지런하고 순진한 운봉산 장사가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포함되려고 힘깨나 쓰는 짐승을 불러 모아 산봉우리를 구름보다 높이 쌓아올렸다. 이를 시기한 금강산 장사가 꾀를 내어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다 지어졌다고 거짓 소문을 냈다. 이 말에 속은 운봉산 장사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산꼭대기 구름 속에서 석달 열흘 동안 땅을 치며 울었다. 이 때 무너져 내린 육각 돌은 너덜지대를 만들었고 눈물이 골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운봉산에 흩어져 있는 거북바위, 사자바위, 말안장바위 등이 산봉우리를 쌓던 동물이 굳어 생긴 것이라는 얘기도 그럴 듯하다.
암괴류를 지나서도 이어지는 현무암 행렬은 감탄을 자아낸다.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듯한 다각형의 돌기둥들은 신비스럽기 그지없고 산길이 끝나는 정상 부근의 바위는 다각형의 돌기둥을 박석처럼 빈틈없이 맞춰 놓은 듯하다.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세상을 한눈에 안아본다. 발아래 넓은 들판과 쪽빛 동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아름다운 수평선, 죽도와 백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불쑥 바다로 내달려 나간 수많은 곶과 길게 줄지어 있는 은빛 백사장, 점점이 이어지는 작은 섬들, 그 주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등 감동적인 비경이 산에 오르는 수고로움을 보상해준다. 북녘하늘 아스라이 금강산이 있고, 남으로는 설악산과 울산바위, 속초의 해안선이 눈 끝에 닿아 있다.
죽왕면 문암2리 해안가에 기암괴석이 있다. 능파대(凌波臺)다. 원래 해안 가까이 위치한 돌섬이었으나 문암천(文巖川) 하구에 쌓인 모래로 육지와 연결됐다. 해안선을 따라 우뚝 서있는 바위는 바다가 조각한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다. 특히 암석의 측면에 생긴 동굴 형태의 구멍인 타포니의 발달이 두드러진다. 골다공증에 걸린 바위 모양이다.
능파(凌波)는 ‘급류의 물결’ 또는 ‘파도 위를 걷는다’는 뜻으로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뜻하기도 한다. 옛날 강원감사가 순시 중 파도가 해안가의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지며 바위에 친필로 그 이름을 새긴 흔적도 남아 있다.
송지호해수욕장 인근에는 서낭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다. 치마처럼 자락을 늘어뜨린 삼각뿔 모양 바위 위에 얇은 허리가 있고 그 위로 둥그런 바위가 올라섰다. 바위 꼭대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만 예류해양지질공원의 여왕머리 바위를 연상시킨다. 1억3000만년 전에 만들어졌고 한다. 모암인 화강암에 규장암질의 마그마가 들어가 수평방향으로 암맥이 발달한 뒤 파쇄·풍화작용으로 생성됐다. 수많은 세월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주변 바닥에 널린 둥근 바위들도 바람과 파도에 더는 서있지 못하고 굴러떨어진 것이다.
호수·해변·정자를 품은 한폭의 산수화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유명한 화진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석호로 둘레가 약 16㎞에 이른다. 화진포 해변 부근의 사취발달로 만(灣)의 입구가 막히면서 형성됐다. 형태는 8자형으로 남호와 북호로 구분되며 남호가 더 크다. 바다와 통하는 물길은 북호에 위치한다.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가 1938년 화진포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그야말로 ‘성’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아름답게 ‘화진포의 성’을 지었다. 6·25전쟁 이전 북한이 점령할 당시 북한의 당 간부들은 여름휴가 건물로 사용했다. 김일성도 가족들과 함께 화진포를 자주 찾았다.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인근에는 1920년 외국인 선교사들이 건축한 이기붕 부통령 별장과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이 자리하고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전망대이다. 해발 70m의 고지 위에 위치하며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 구선봉과 해금강을 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신선대, 옥녀봉, 채하봉, 일출봉 등 금강산도 시선에 잡힌다.
송지호는 청명한 물을 품은 둘레 4㎞의 호수다. 가을이면 고니가 날아와 겨울을 나고 간다. 2007년 7월에 개관한 철새관망타워는 5층 규모로 떼지어 날아드는 철새들의 군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자연생태학습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능파대에서 해안선을 따라 약 1㎞ 남쪽 토성면 교암리에는 고성팔경중 하나로 꼽히는 천학정이 위치하고 있다. 1931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 팔각지붕의 단순한 구조로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 바라보고 북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천학정에서 3㎞ 떨어진 천진천 하구 구릉에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유형문화재 제32호)이 위치해 있다. 창건연대나 창건자는 미상이나 조선조 중종 15년(1520년)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측된다. 1884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28년 재건됐고 이후 몇차례 보수됐다. 이밖에 속초와 고성의 경계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울산바위는 바로 액자를 씌우면 한 폭의 그림이 될 만큼 운치 있는 모습이다.
고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