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8월의 크리스마스

입력 2015-08-26 00:20

몇 해 전 함께 살던 친구가 “우리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볼까” 그랬다.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그건 사치가 아닐까?” 내가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친구들이 올 때마다 그 나무에 소원을 걸면 얼마나 멋질까? 그건 사치가 아니라 우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 거야.” 그날 저렴한 트리와 전구를 샀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여덟 명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여럿이 모이면 말수가 적은 친구도 있어서 돌아가며 이야기할 기회를 갖기로 했다.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이 행복했고, 무엇이 슬픈지 이야기했고 다음해의 소원을 나눴다. 그런 후 나는 그 소망을 글로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무얼 써야 할지 막막하다며 난감해하던 친구들이 차츰 신중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크리스마스마다 나는 같은 친구들을 초대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촛불을 켜고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했다. 그런 후에야 나는 깜짝 선물이라며 작년에 쓴 기록들을 각자에게 나눠줬다. 다들 ‘내가 이런 걸 썼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모일 수 있음에 감사하다며 다음해에도 간직할 수 있게 소망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은 기꺼이 펜을 꺼냈다.

어제 급하게 그 친구들을 소집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멀리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오늘을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어떨까? 2년간의 소망을 기록해주면 내가 잘 간직했다가 돌려줄게.” 친구들은 2년간의 이별이 슬프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며 각자의 소망을 기록했다. ‘나의 첫 번째 소원은 2년 후에도 이 사람들과 함께하기, 두 번째 소원은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 보내기, 세 번째 소원은 우즈베키스탄에서 2년간 행복하게 지내다 돌아오기.’

너무나 특별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 우리는 ‘서징 포 슈가맨’의 OST를 들으면서 “오늘이 정말 크리스마스 같아”라며 적잖이 감동했다. 그리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했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