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양측은 한반도 군사적 위기 타개를 위해 24일 자정을 넘겨 또다시 밤샘 협상을 벌였다. 특히 양측은 한때 사과 등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뤘다가 북측이 돌연 입장을 바꿔 다시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입장 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및 재발방지" 언급 이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핵심 쟁점에서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 때문에 전체적인 합의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현안에 대해선 합의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 주체, 발표 형식 놓고 막판까지 협상 난항=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남북 고위급 접촉 대표단은 협상 사흘째인 24일에도 핵심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를 쉽게 좁히지 못했다. 특히 한때 양측 간 접점이 마련돼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오후 들어 북측의 협상 태도가 다시 강경한 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핵심 쟁점인 사과의 주체에 대한 의견 대립도 이어졌다. 우리 측은 도발행위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의 주체를 ‘북측’으로 분명히 적시하고 ‘사과’ 또는 ‘강한 유감’ 등의 표현 역시 합의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측은 명시적인 사과 대신 우회적인 표현을 거듭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북측은 여전히 대북 확성기 방송의 즉각 중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발표 형식을 놓고도 양측은 한동안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은 남북 간 합의를 전제로 한 ‘합의문’ 형식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양측의 입장을 담은 ‘발표문’으로 하자는 주장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대표단은 사과와 재발방지, 대북 심리전 등에 대해선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였지만 긍정적 기류도 엿보였다. 일단 북측이 장시간 계속되는 협상장의 판을 뒤엎고 나가지 않는 등 강한 대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양측은 우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양측 대표단은 대표단 회담, 수석대표(김관진·황병서) 회담, 정회를 반복하며 접점 찾기에 주력했다. 협상이 잠시 중단된 동안 양측의 훈령을 받고 다시 회담에 임하는 과정도 반복됐다.
협상 과정에선 이산가족 상봉 등 일부 현안에 대해선 진전도 감지됐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현재 합의 마무리를 위해 계속 논의 중에 있다”고 말해 어느 정도의 합의점이 마련됐음을 시사했다.
남북 대표단은 군사적 긴장 상황 외에도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관계 현안을 폭넓게 다뤘다. 우리 측이 요구하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가 우선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고, 천안함 피격 사건에 따른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한·미 연합 군사훈련 등의 문제 등도 포괄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확고한 대북 원칙론 속 협상 장기화도 감내=사흘째 협상에서도 합치점을 쉽게 찾지 못함에 따라 협상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지뢰 및 포격 도발에 대한 우리 입장은 단호하다. 더 이상 북한의 급작스러운 도발에 대해 유야무야 넘어갈 수 없다는 확고한 대북 원칙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매번 반복돼온 도발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이라며 협상 가이드라인을 재확인했다. 북측이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여 온 확성기 방송에 대해서도 “사과가 없다면 이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분명한 시인과 사과, 재발방지책 등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과거처럼 북한이 도발로 위기를 조성한 뒤 일시적으로 대화 모드가 조성되면 북한의 시인이나 사과 없이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이나 보상으로 긴장을 완화시키고, 이를 노린 북한이 다시 도발을 감행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에 이번에도 아무 일 없었던 듯 넘어갈 수는 없다”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번에는 달라지는 결과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매번 반복되는 북한의 대남 전략에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협상 장기화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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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5 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