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이 무박 3일 ‘끝장 협상’ 양상으로 진행됐다. 남북 회담에서 밤샘 협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최고위급이 40시간 넘게 얼굴을 맞대고 피 말리는 마라톤협상을 벌인 건 매우 이례적이다. 양측 모두 협상 의지가 강하지만 의미 있는 교집합을 찾아내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접촉은 양쪽 정상이 협상 상황을 실시간 지켜보며 방향을 지시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간 ‘대리 정상회담’ 성격도 짙다.
남북 대표단은 전날 시작된 2차 접촉을 24일에도 이어갔다. 대표단은 23일 오후 3시30분 회담장이 마련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으로 들어간 뒤 30여 시간 넘게 발이 묶였다. 22일 첫 접촉(9시간45분)까지 포함하면 무박 3일간의 전례 없는 끝장 협상을 벌인 셈이다.
이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이 접촉의 빌미가 됐지만 양측이 대화 테이블 의제로 포괄적 주제인 ‘남북관계’까지 올려놨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군사적 긴장 관련 의제 외에 이산가족 상봉, 5·24조치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의제 하나하나가 향후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무게감이 있어 진척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양측은 사안마다 각자가 제시한 초안을 놓고 문안을 조율한 뒤 이를 서울과 평양에 알리고 훈령을 받아 다시 조율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접촉은 합의된 의제 없이 급박하게 성사된 탓에 양측은 의제 설정부터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정회가 거듭됐고, 남북 간에 얼굴을 붉히며 거센 설전도 오갔다고 한다. 접촉 상황을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양측은 서로 생각하는 협상 마지노선이 무너질 경우 국가적 자존심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밀리면 끝’이라는 사생결단식 담판을 계속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과 김 제1비서는 남측 평화의 집 회담장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영상과 소리를 각각 전송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급 접촉이 ‘2+2’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실상은 남북 최고 지도자 간 간접 대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위기관리상황실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실시간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도 평양에서 협상 상황을 파악한 뒤 유선으로 훈령을 전달하는 식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협상 진척을 위해 회담장이 아닌 평화의 집 내 별도 공간에서 ‘일대일 수석대표 접촉’도 진행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서울과 평양에서 내려지기 때문에 접촉이 길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정상들이 협상에 수시로 개입해 대표단의 재량권이 줄었다는 의미다. 특히 북측의 경우 이번 협상이 체제 안정 문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대표단의 재량이 크지는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와 주요 부처, 정치권은 상시 비상체제를 이어갔다. 특히 청와대는 핫라인을 통해 전달되는 회담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책을 숙의하느라 수시로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하루 앞두고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한반도 정세에 대한 엄중한 인식으로 반환점의 ‘반’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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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5 0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