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 준비 없이 다급히 시작? 국제사회 명분 쌓기?

입력 2015-08-25 02:27
북한의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3일째 계속된 24일 경기도 파주 인근 서부전선에 적막감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우리 군 최전방 경계소초(GP·아래쪽) 너머로 북한군 GP(위쪽)가 보인다. 연합뉴스

남북 고위급 접촉에 임하는 북한의 상반된 태도에 의문이 쌓이고 있다. 먼저 대화 제의를 했을 때만 해도 협상 조기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많았지만 막상 본 협상에 들어가자 진일보한 제안 없이 ‘사과 불가’ 입장만 반복하고 있어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섣부른 도발로 진퇴양난에 빠진 북한이 준비 없이 대화에 나왔다는 분석과 함께 ‘선제적 제의’를 명분으로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이란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수세에 몰린 북한이 궁여지책으로 대화에 나섰다는 정황은 북한 내부 정세에서부터 감지된다.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는 직접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접촉을 제의해 왔다. 협상 파트너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지목한 우리 측 제안도 15시간 장고 끝에 수락했다.

그동안 회담 파트너의 ‘격’을 문제 삼거나 무리한 대화 전제를 제시하며 자존심 싸움을 벌여 왔던 것치고는 이례적인 행동이다. 성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4일 “대북 심리전 재개로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이 바로 대남 라인 책임자인 김 비서”라며 “북한 협상 파트는 무조건 대북 심리전 중단 약속을 받아내야 하면서도 우리 측 요구대로 명시적인 사과나 유감을 표명할 수는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이례적으로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도 북한 수뇌부가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가뜩이나 악화된 북·중 관계 속에서 직접 경고까지 날아들자 버틸 도리가 없었다. 정부 소식통은 “중국이 겉으로는 남북 모두에 자제를 요청한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대한 경고였음을 우리 정부에 여러 경로를 통해 설명해 왔다”고 했다.

반면 국제사회에 북한의 평화적 노력을 어필하며 명분을 쌓고, 협상 결렬 시 남한에 책임을 묻기 위한 노림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핵실험 및 미사일 개발 등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온 만큼 “우리도 대화를 원한다”는 면피성 제스처를 취했다는 것이다.

먼저 대화 제의를 함으로써 남측에 협상 성과에 대한 부담감을 떠넘기고,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전략적 행보로도 해석된다. 북한으로선 평행선을 달려온 입장 차를 단숨에 좁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협상 성과보다는 대화 제의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협상 장기화 국면 역시 북한으로선 그만큼 자신들의 ‘대화 성의’를 표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조급함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잇따른 대북 경제 제재로 악화된 경제 상황도 북한이 자발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유로 꼽힌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최근 여러 공식 문서 등에서 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구구절절 표현해 왔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도 지난 17일자 사설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도 많고 없는 것도 적지 않다… 자력갱생의 의의와 생활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이 경우 남북 간 협상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발판삼아 미·중 등 강대국을 끌어들여 ‘통 큰’ 지원책을 받아내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강준구 문동성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