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 北 수십 차례 도발… ‘사과’는 단 8번

입력 2015-08-25 02:29

판문점 남북 고위급 접촉이 3일째 난항 중이지만 이번 협상에 나선 우리 정부의 최종 목표는 북한의 ‘책임 있는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두 사건 모두 ‘남측의 조작’이라는 억지 주장만 반복하고 있어 회담 성패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북한은 분단 이후 수십 차례 대남 도발을 감행했지만 사과 입장을 피력한 것은 단 8건에 불과했다. 책임소재가 너무나 명확해 도저히 잡아떼기 곤란하거나 우리 측이 대북 지원을 지렛대로 삼았던 경우에 국한됐다. 그마저도 주체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유감 표명’ 수준에서 입장을 정리한 게 다였다.

북한의 유감 표명 첫 사례는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1·21사태)이다. 북한군 정찰국 소속 무장간첩 31명을 남파해 청와대를 기습하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4년 후 김일성 주석은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대단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내부의 좌경 맹동분자의 소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1976년 8월 북한군이 미군 2명을 살해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는 사흘 만에 사과 입장을 내놨다. 미군이 전폭기와 전략폭격기, 항공모함을 전개하는 등 군사적 압박에 들어가자 북한은 김일성 주석 명의로 유감 입장을 전달했다.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3개월이 지나서야 유감을 표명했다. 동해안에서 북한 잠수함이 좌초돼 특수부대원 26명이 강릉 일대에 침투해 49일간 우리 민간인과 군인 등 수십명이 죽거나 다친 사건이다. 사건 직후 “(잠수함은) 정상적 훈련 중 좌초됐다”고 잡아떼던 북한은 결국 그해 12월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 등 매체를 통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영화 ‘연평해전’의 소재가 된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때는 한 달 뒤인 같은 해 7월 우리 정부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사과 입장을 전했다. 북한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적 충돌이 아니고 인명 피해도 없었으나 사과를 받아낸 경우도 있다. 1995년 6월 대북 지원용 쌀을 실은 화물선 시아펙스호에 북한이 인공기 게양을 강제한 ‘인공기 게양 사건’ 때다. 당시 남북은 북한에 입항하는 남측 선박에 국기를 걸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우리 측이 “사과가 없으면 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강경 대응하자 북측은 한 달 뒤 “아래 일꾼들의 실무적 착오였다”면서 “유감을 표한다”고 전해 왔다.

이외에도 북한은 2009년 임진강 황강댐 물을 방류해 우리 국민 6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 “뜻하지 않은 인명 사고가 발생해 유감스럽다”면서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 입장을 밝히면서도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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