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일곱 살 민규는 생사를 다투던 4명에게 ‘삶의 기적’을 선물하고 하늘나라 별이 됐다.
짧은 생을 살고 간 아들을 기리기 위해 남은 가족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아빠 박창욱(40)씨는 생명 나눔을 노래하는 합창단이 꾸려진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엄마 허현아(33)씨와 민규의 형, 두 동생은 첫 합창 연습이 있던 지난 주말, 부산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현역 군인인 아빠는 갑작스러운 비상근무로 이번 연습엔 빠졌다.
허씨는 “누군가 민규 몫까지 건강하게 살아주면 더 바랄 게 없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할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 가족은 합창 연습을 위해 매주 토요일 서울까지 왕복하는 ‘고생’을 선택했다.
전남 광양에 사는 홍광진(38)씨도 합창단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 오랫동안 선천성 심장병을 앓아온 홍씨는 지난해 누군가로부터 심장을 기증받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홍씨는 “그분의 심장이 없었다면 오늘같이 가슴 뛰는 하루를 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귀한 생명을 나눠준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뇌사 장기기증자 가족, 수혜자, 의료진, 코디네이터, 장기기증서약자 등 71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소리 합창단’이 국내 처음으로 창단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기기증원(KODA)은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유중아트센터에서 창단식을 갖고 첫 연습을 시작했다.
모두 생면부지였지만 ‘생명 나눔’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하모니는 금세 큰 울림을 낳았다. 유치원 어린이부터 70세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음역은 달랐지만 지휘자로 나선 장연정(42)씨의 지도로 금방 화음이 맞춰졌다. 장씨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뜻 깊은 일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합창단원들은 연습 도중 저마다의 아픈 사연과 참여 이유를 털어놨다. 박유나(8)양은 지난해 6월 장기기증을 하고 곁을 떠난 아빠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며 지원했다. 박양의 할머니 임귀녀씨는 “아이 목소리가 하늘에까지 닿았으면 좋겠다”며 손을 꼭 잡았다.
올해 2월 7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25세에 세상을 떠난 이응상씨의 아버지 이봉화(57)씨와 어머니 김애자(52)씨는 “아들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합창단 참여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면서 “음치여서 노래를 잘 못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연세대 서울대 목포대 등의 성악과 학생 19명은 합창단 지도를 위해 서포터스로 참여했다. 연세대생 김신재씨는 “장기기증에 대해 잘 몰랐는데 여기 와서야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두 달간 연습한 뒤 10월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열리는 ‘세계 장기 기증 및 이식의 날’ 행사에서 공연한다. 작곡가 이흥렬 선생의 아들인 이영조씨가 장기기증을 소재로 곡을 만들고, 서울대 의대 하종원 외과 교수가 가사를 쓴 ‘주는 사랑, 받는 감사’ 등 3곡을 합창할 계획이다.
하 교수는 “합창단은 생명과 사랑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생명 나눠주고 별이 된 가족 위해 노래합니다”… ‘생명의 소리 합창단’ 국내 첫 창단
입력 2015-08-25 0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