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나흘째 고위급 접촉을 진행했다. 밤샘협상이 계속 이어지는 전례 없던 일이다. 그만큼 쌍방이 현 사태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는 뜻이고, 그렇다고 대화의 기조를 이탈할 생각이 서로에게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고위급 접촉 자체가 돌발적 위기 상황에 따른 급작스러운 대화여서 미리 합의된 의제는 없었다. 따라서 양측 수석대표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최고 통치자의 의중을 정확히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인 만큼 그동안 남북이 쌓아두었던 현안들을 놓고 대화를 가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기록이 남는 공식적인 2+2회담 외에 두 수석대표만이 별도로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상당한 의미가 있다. 양측이 명분이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공식적으로 얘기하지 못할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속내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남북이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마련됐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 마무리를 위해 계속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조심스럽지만 합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설사 양측이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낮은 단계부터 우선 합의해 구체화시키는 가시적 노력을 서로 보여주고, 대화를 더 진전시켜 합의 수준을 높여가는 것도 수용할 만하다.
남북은 제안과 수정 제안을 통해 성사시킨 2+2회담의 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김 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은 안보·군사 정책 분야의,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통일 전략 분야의 책임자이자 최고 통치자와 바로 연결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대화의 틀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회담 이후에도 과거 사례에서 볼 때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매번 반복돼온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후에도 정부는 북한 당국에 재도발 시 ‘후회할 정도의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줘야 한다. 이 방침은 재도발에 대한 우리의 움직일 수 없는 군사 대응 기조라는 점을 대내외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안보태세를 굳건히 다져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이 이번에 잠수함(정) 기동, 화력부대 및 공기부양정 전방 배치, 해안포 개문, 특수부대원 이동 등 전방 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취한 각종 조치는 오히려 유사시 북한군의 움직임을 짐작케 하는 귀한 정보였다. 또 한·미 연합 감시 자산이 북한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추적하고 준전시상태에서의 북한군 매뉴얼도 분석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통령과 정부, 군은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여론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바라지도 않지만 일단 유사시에는 정부와 군을 신뢰하고 있으며, 군이 응징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 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위급 회담 결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재도발을 한다면 강력히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표명하면서,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유지를 위해 전략적 대화는 이어갈 것이라는 정부 입장을 분명히 강조해야 한다.
[사설] 北 사과·재발 방지 전제 하에 전략적 대화 이어가야
입력 2015-08-25 00:36 수정 2015-08-25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