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르파주(58)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현대 연극의 귀재’다. 작품 구상부터 대본 집필, 연출, 무대설계, 연기까지 모두 소화하는 ‘르네상스 맨’이기도 하다. ‘달의 저편’(2003년)과 ‘안데르센 프로젝트’(2007년) 등 두 번의 내한공연을 통해 한국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가 자신의 대표작 ‘바늘과 아편’(9월 17∼19일 LG아트센터·사진)으로 8년 만에 찾아온다.
캐나다 퀘벡 출신인 그는 전통적인 연극 형식에 첨단 테크놀로지를 도입한 독창적 무대로 관객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크린 위에 다양한 이미지를 투사함으로써 시각적인 스펙터클을 창출하는데,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스토리 흐름과 배우 연기를 뒷받침해 시적 서정이 넘치도록 만든다. 덕분에 연극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한편 화려한 시청각 이미지에 익숙한 현대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부분 실험극 연출가들이 언어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과 달리 르파주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특히 삶과 죽음, 사랑과 고독, 갈망과 욕구 등 인간의 보편적인 테마를 담은 작품은 관객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한다.
그는 또 태양의 서커스 가운데 최대 규모와 인기를 자랑하는 ‘KA’(2005년)와 근래 오페라 최고의 문제작으로 기록된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2010∼2013년) 등 순수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종횡무진 오가며 세계 공연계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1991년 초연된 ‘바늘과 아편’은 르파주를 현대 연극사에 우뚝 서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기계장치 사용과 더불어 텍스트에서 탈피해 이미지에 크게 의존함으로써 연극의 본질 논란을 일으켰다.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하고 출연까지 한 이 작품으로 그는 캐나다 공연예술계 최고 영예인 찰머스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작가 겸 영화감독 장 콕토, 미국의 유명한 재즈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캐나다의 배우 로베르가 ‘중독된’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면서 ‘중독돼’ 가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다. 두 실존인물과 달리 가상인 로베르에는 초연 당시 실연(失戀)했던 르파주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22년 만에 리바이벌 된 작품은 모노드라마에서 2인극으로 바뀌었다. 초연 때 데이비스는 이야기 안에 존재할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무대에 등장한다. 무엇보다 눈부신 일루전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큐브가 회전하면서 눈 깜짝 할 사이에 뉴욕의 밤거리, 파리 재즈 클럽,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로 변신을 거듭한다. 덕분에 처음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감각적이 됐다.
“우리 시대의 연극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마지막 회합의 장으로서,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것이 되었다”는 르파주의 연극은 계속 진화 중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연극의 귀재’ 르파주 대표작 ‘바늘과 아편’ 국내 무대 올린다
입력 2015-08-25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