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주고 끌어주고… 나도 천만! 너도 천만?

입력 2015-08-26 02:48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과 10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베테랑’은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투 톱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극장가 돌풍을 이끄는 러닝메이트가 된 것이다. 국내 최초의 최단기간 쌍 천만 한국영화 탄생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암살’과 ‘베테랑’의 쌍끌이 흥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로 도우며 윈-윈한 ‘암살’과 ‘베테랑’=7월 22일 ‘암살’이 개봉한 다음주(30일)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이 톰 크루즈와 함께 찾아왔고, 그 다음주(8월 5일)에는 ‘베테랑’이 선보였다. ‘암살’이 1000만을 돌파하기 전후로 ‘미션 임파서블’과 ‘베테랑’이 차례로 500만을 넘어섰다. ‘베테랑’은 개봉 이후 한번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베테랑’은 23일까지 904만 관객을 기록해 천만 돌파는 시간문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작품 두 편이 연속으로 천만 영화가 되는 진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암살’과 ‘베테랑’은 서로 영화가 잘 되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 영화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관객에게 시원한 액션과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암살’은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베테랑’은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등 연기파 스타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암살’ 관객 중 20대 36.1%, 30대 25%, 40대 25.5%였다. ‘베테랑’도 20대 38.9%, 30대 24.5%, 40대 25.5%로 비슷하다. ‘암살’에는 ‘어제’ ‘독립’ ‘고맙다’라는 키워드가 붙는 데 반해 ‘베테랑’에는 ‘현재’ ‘정의’ ‘통쾌하다’가 주요 키워드다.

◇역대 쌍끌이 영화의 흥행기록=쌍끌이 흥행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명량’(1761만명) 바로 앞에 ‘군도: 민란의 시대’(477만명)가 길을 열어주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866만명)이 뒤를 밀어줬다. 지난해 초에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1029만명)과 한국영화 ‘수상한 그녀’(865만명)가 밀고 끌어줬다.

2013년 초에는 ‘7번방의 선물’(1281만명)과 ‘베를린’(716만명)이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고. 여름에는 천만 돌파에는 실패했지만 ‘설국열차’(935만명)와 ‘관상’(913만명)이 바통을 이었다. 연말에는 ‘변호인’(1137만명)과 ‘용의자’(413만명)가 러닝메이트가 됐다. 2012년에는 ‘도둑들’(1298만명)과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명)가 두 달 간격으로 개봉해 나란히 흥행 기록을 세웠다.

2007년에 ‘디 워’(785만명)와 ‘화려한 휴가’(685만명)가 한 주 차로 개봉해 동반 흥행한 사례도 있다. 쌍끌이 흥행은 여름방학이나 추석 또는 설 연휴 등 비슷한 시기에 화제작을 개봉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등 국내 4대 배급사가 이 시기에 맞춰 대작을 배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작 경쟁으로 입지 좁아진 다양성 영화=쌍끌이 흥행은 ‘대박 영화’와 ‘쪽박 영화’로 갈라지는 한국영화의 양극화 현상을 드러낸다. 국내 극장가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체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2∼3편의 대작이 맞붙더라도 각 영화에 800개∼900개 정도의 스크린을 몰아줄 수 있으니 동반 흥행이 가능하다.

개봉 당시 1000개 안팎의 스크린을 확보한 ‘베테랑’의 23일 현재 스크린은 892개, ‘암살’은 606개다. 중소 규모의 영화들과 상영 기회가 제한된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은 대작 경쟁이 치열할수록 스크린 부족을 겪게 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사상 처음으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작가의 ‘위로공단’은 20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다. 누적관객은 7032명에 불과하다.

대작 영화들이 스크린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작은 영화는 하루에 한두 번, 그것도 심야에 상영되기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보기가 어렵다. 잘 되는 영화에만 관객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화계 관계자는 “큰 영화들끼리는 동시에 붙어도 서로 파이를 깎아 먹지 않는다. 작은 영화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