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강간죄 기소 여성’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9명이 만장일치로 그렇게 판단했고,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무죄 판결 뒤에는 여성 국선전담변호사 2명의 조력이 있었다.
◇그녀는 왜·어떻게 무죄가 됐나=피고인 전모(45·여)씨의 혐의는 ‘강간미수’와 ‘집단·흉기 등 상해’ 두 가지였다. 전씨는 지난해 8월 19일 이별을 요구하는 내연남 A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잠든 A씨의 손발을 노끈으로 묶고 성관계를 시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잠이 깬 A씨가 저항하자 망치로 그의 머리를 내려친 혐의도 적용됐다. 이 사건의 직접 증거는 피해자 A씨의 진술뿐이었다. A씨의 진술대로 전씨가 그를 강간하려 했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망치를 휘둘렀는지가 쟁점이 됐다.
검찰은 “전씨가 수면제를 탄 홍삼액을 A씨에게 먹인 뒤 강간을 시도했다”며 “A씨가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밀쳐내 성관계에 실패하자 ‘다 끝났다. 죽여버리겠다’며 쇠망치로 A씨의 머리를 때려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전씨 측은 “수면제를 먹여 손발을 노끈으로 묶고, 망치를 휘두른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강간 의도가 없었고 잠에서 깬 A씨가 폭력을 휘둘러 ‘정당방위’ 차원에서 망치를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씨에게 지적장애가 있고, 이전부터 A씨와 가학적 성관계를 가져왔다고도 했다.
양측 주장을 모두 들어본 배심원들은 두 혐의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배심원들은 A씨의 진술이 객관적 정황과 지나치게 다르다고 봤다. A씨는 “전씨가 휘두른 망치로 머리를 맞을 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머리를 다친 상태에서 전씨의 피를 닦아줬다”고 하는 등 진술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A씨의 상처가 전치 2주에 불과한 점, 진단서에는 ‘둔기’라고만 써있던 점 등으로 볼 때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2013년 6월 강간 피해자 범위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개정 형법이 시행된 후 남성에 대한 강간미수죄로 기소된 여성은 전씨가 처음이다. 검찰과 변호인 측이 공방을 펼친 지점도 ‘강간죄’의 성립 여부였다.
◇‘무죄’ 이끈 여성 국선변호사 2명=‘첫 여성 강간범’이란 꼬리표가 붙은 전씨를 변호한 건 2명의 여성 국선전담변호사였다. 김정윤(40·연수원 35기) 김현정(33·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는 매주 1, 2회 전씨를 접견했다. 주말에도 전씨 자택을 방문해 그의 정당방위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전씨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가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찾아냈다. 이후 법정에서 “강간할 의도였다면 스스로 수면제를 먹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고,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 석방이 결정된 전씨는 두 변호사와 함께 눈물을 쏟았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다시는 A씨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강간죄 기소 첫 여성’ 국민참여재판 무죄 선고 “피해 남성 진술 앞뒤 안맞아”
입력 2015-08-24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