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포스코 수사… 정동화 이어 배성로까지 핵심 인물 구속영장 기각

입력 2015-08-24 02:03
검찰이 ‘국민 기업의 정상화’를 표방하며 160여일간 진행한 포스코 수사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비리 의혹의 핵심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법원에서 퇴짜를 맞으면서 수사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전열을 정비해 계속 밀고나가기도, 반대로 후퇴하기도 곤란한 처지가 됐다.

검찰이 수사 막바지 분수령으로 꼽았던 배성로(60) 전 동양종합건설 회장의 구속영장은 지난 22일 새벽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김도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 전 회장은 “포스코 수사는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귀가했다. 횡령·배임·사기 등 7가지 혐의를 적용하고도 신병 확보에 실패한 수사팀이 받은 충격은 크다.

포스코 수사는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시작한 1호 사정(司正) 수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3월 13일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사옥 압수수색과 함께 전방위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는 포스코건설의 국내외 비자금 의혹부터 시작해 포스코 협력업체 코스틸,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동양종합건설 등으로 계속 외연을 넓혔다. 최종 타깃은 정준양(67) 전 포스코그룹 회장 등 이명박정부 시절 그룹 수뇌부와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이었다.

그런데 정준양 회장 체제에서 ‘2인자’로 불렸던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두 차례 연속 기각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검찰은 압수수색 60여일 만인 5월 20일 1차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수사 결과물에 의문을 표하며 기각했다. 이후 두 달여 보강조사 끝에 청구한 2차 구속영장 역시 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 전 부회장을 ‘징검다리’ 삼아 정 전 회장으로 올라가려는 수사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 무렵부터 재계를 중심으로 포스코 수사 장기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배 전 회장 수사로 반전의 기회를 잡으려던 검찰로서는 그의 구속영장 기각이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도 일종의 기세싸움인데, 법원이 수사 전체 구도를 봐주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로 포스코 전현직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 10여명을 구속했지만 여전히 핵심을 치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충분한 첩보 수집과 내사 없이 ‘하명’에 떠밀려 성급히 칼을 빼든 게 수사의 중요 고비마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검찰이 포스코 비리와 관련한 여러 갈래 중 포스코건설을 첫 단추로 삼은 데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월 취임 열흘 만에 “포스코건설 해외비자금 의혹을 엄정 조사하라”고 특정해 지시한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가 착수 단계부터 검찰의 당초 구상과는 다르게 전개됐다는 얘기다.

검찰은 그간의 수사 상황을 종합해 핵심인물 구속영장 재청구를 비롯한 향후 수사 방향을 고민할 계획이다.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 현재까지 벌여온 내용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