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불사’까지 선언했던 북한이 갑자기 대화를 제의하며 화전 양면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어떤 도발에도 ‘강력 응징’ 태세를 유지한 박근혜정부의 단호한 대북 스탠스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70주년 전승절 행사를 ‘크게’ 치르려던 중국이 돌발변수로 등장한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한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목함지뢰 도발 이후 우리 군이 보복조치로 재개한 대북 심리전 방송, 갈수록 어려워지는 북한 내부의 경제적 사정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벼랑 끝 전술’을 일삼던 ‘김정은 북한’이 오히려 서툰 도발 끝에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셈이다.
북한은 마치 군사행동이 임박한 것처럼 위기를 조장했지만, 실제 추가 도발을 감행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후 북한에 대해 ‘대화를 통한 협력 논의는 가능하나 도발에는 단호하게 응징한다’는 ‘투 트랙’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번 포격 도발에 맞서서도 박 대통령은 직접 3군사령부를 찾아 대비태세를 점검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이 원칙을 천명했다. 북한은 각종 미사일 실험과 군사 도발로 우리 정부를 자극하고 남남 분열을 꾀했지만, 우리 정부의 변함없이 단호한 원칙 고수에 결국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이번에 북한 지도부에 가한 압박은 다시 한번 ‘한반도에 대한 중국 역할론’을 재부각시켰다. 전승절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중국은 북한의 이번 도발을 ‘사고’로 인식했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추가 도발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은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우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는 지난 21일 “현 상황에 대해 건설적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고,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을 직접 겨냥해 “중국은 그 어떤 긴장 조성 행위도 반대한다”고 압박한 것이다. 북한은 안명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김영철 북한군 정찰총국장 등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사태가 남측이 조작한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가장 가까운 최우방인 중국마저 외면하는 억지에 불과했다.
여기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은 북한의 군사적 한계마저 명확하게 드러냈다. 북한 지도부는 섣불리 군사행동에 나섰다간 한·미가 곧바로 연합작전을 전개해 스스로 궤멸될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2일 북한이 제시한 데드라인(오후 5시)을 앞두고 미7공군 소속 F-16 전투기 4대와 한국 공군 F-15K 전투기 4대가 벌인 대북 무력시위 기동은 북한으로 하여금 실전으로 인한 체제 붕괴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이 설정한 48시간 데드라인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우리 군이 11년 만에 재개한 대북 심리전도 북한을 뒤흔들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북한 고위층의 가혹한 숙청 등을 폭로하는 내용에 북한 지도부는 노심초사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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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4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