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이 좋아 육상을 시작했다. 강원도 속초 설악중학교 1학년 때 800m와 1500m 중거리 달리기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는 달리기엔 소질이 없었다. 여자 선수들에게도 질 정도였다. 중3 때 보다 못한 체육 선생님이 그를 불러 “달리기로는 안 되겠다. 경보로 바꾸든지 아니면 운동을 그만두라”고 강요했다. 그는 운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경보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김현섭(30·삼성전자)은 비인기의 설움을 겪고 있는 육상 중에서도 기피 종목인 경보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한눈팔지 않고 걷고 또 걸어 마침내 한국 육상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3회 연속 톱10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현섭은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 경보에서 1시간21분40초를 기록해 10위에 올랐다. 경기 후반까지 김현섭은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베이징 국립경기장을 출발해 경기장 동쪽 아스팔트 도로를 19번 왕복한 뒤 다시 국립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이날 코스에서 김현섭은 마지막 19번째 바퀴까지 1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무서운 뒷심을 발휘해 3명을 따라잡아 10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2004년 10월 김현섭은 경보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전국체육대회 20㎞에서 3위에 입상했다. 삼성전자에 입단해 이민호 코치(현 경보 대표팀 코치)로부터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받은 김현섭은 한국 경보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냈으며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1년 8월 28일 대구대회 20㎞ 경보에서 1시간21분17초로 6위에 오르며 한국 경보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10위 안에 진입한 김현섭은 2013년 8월 11일 모스크바대회에서도 10위를 차지하며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1997년 아테네대회 8위·1999년 세비야대회 6위)에 이어 한국 육상 사상 두 번째로 두 대회 연속 세계선수권 10위권 진입이라는 기록을 작성했다. 이어 이번 베이징대회에서 10위에 올라 한국 육상의 새 역사를 썼다.
김현섭은 지난 3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신기록(1시간19분13초)을 작성하고, 5월 세계경보챌린지에서 3위에 오르며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 경보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김현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보 선수가 뛸 수 있는 국내 실업팀은 두 곳뿐”이라며 “경보는 엄격한 규정이 있는 종목이라 지도자와 함께 훈련하는 게 중요한데 경보 선수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내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경보’ 김현섭, 그가 걸으면 역사가 된다… 한국 육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3회 연속 톱10 진입 쾌거
입력 2015-08-24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