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모규엽] 벼랑끝 전술

입력 2015-08-24 00:10

1955년에 나온 미국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선 주인공 짐(제임스 딘)과 연적 버즈(코리 알렌)가 밤에 해안 절벽을 향해 자동차로 전력 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50, 6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담력을 시험하기 위한 극단적인 게임이 벌어졌다. 두 명이 막다른 외길에서 서로 마주보고 차를 몰아 한쪽이 먼저 겁을 집어먹고 핸들을 꺾으면, 핸들을 돌리지 않은 사람이 “겁쟁이”라고 부르면서 경기가 끝나는 형식이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나온 게임은 약간 변형된 것이다.

여기서 정치·군사적 용어 두 가지가 비롯됐다. 퇴로 없이 두 대의 차가 마주 보고 돌진하듯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치킨게임’이라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 상대가 핸들을 꺾도록 하는 방법을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한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협상에 임해 최대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속셈이 있다.

북한이 최근 잇단 도발에 이어 갑자기 대화를 제의했다. 48시간 내에 모든 심리전 수단을 전면 철거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간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데 이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대화를 제의했다.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로 보인다.

북한은 벼랑 끝 전술로 재미를 봐 왔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강행해 위기상황을 조성한 뒤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통해 100만t의 에너지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짭짤한 성과를 본 게 대표적이다. 반면 성과를 못 얻은 경우도 있었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이은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 개성공단 폐쇄 때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뒤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와 북·미 대화 재개 등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처음부터 “협박에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으로 맞서 개성공단을 정상화시켰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원칙과 일관성’이다.

모규엽 차장 hirte@kmib.co.kr